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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으로 마음을 풍족하게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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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을 마음의 양식으로


《잡아함경》등 여러 경전에는 중생이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데 필요한 네 가지 먹이(四)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먹이가 있어서 중생들을 먹여 이익 되게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세상에 살면서 그것을 거두어

먹고 크고 자랄 수 있게 한다.

어떤 것을 넷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첫째는 삼켜 먹는 먹이요,

둘째는 닿음이라는 먹이요,

셋째는 생각(의지)이라는 먹이요,

넷째는 마음이라는 먹이이니라.

有四食 資益衆生 令得住世攝愛長養云何爲四

謂一序 識二細觸識 三意은思食 四識食”

(《잡아함경》 제15권, 373경,대정장2, 102쪽 중, 한글대장경(구판) 422쪽)

 


‘삼켜 먹는 먹이’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먹는 음식물 등을 말합니다.

우리는 음식물을 섭취하여 힘을 내고

생활해 나가는 것입니다.

‘닿음이라는 먹이’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등의

여러 대상이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意) 등의

감각기관에 부딪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닿음이 없으면 우리는 외부 대상과

단절되고 말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작용에 의해여

우리는 외부대상을 느끼게 되고

그 다음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대상이 감각기관에 와 닿는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계속 유지시키는 의미에서

‘닿음’은 먹이 (양식)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의지)라는 먹이’는 무엇에 대하여

희구(희망)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의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멀리 물이 보이면

지금 당장 물을 먹을 수는 없지만,

희망이 있어 죽지 않는 경우와 같습니다.


‘마음이라는 먹이’는 마음에 의해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지속시켜 나가기 때문입니다

(《섭대승론석》 제3권, 대정장31, 332쪽 중 참고).

물론 부처님께서는 이 네 가지 먹이에 대하여

그 인과 관계를 잘 살펴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부처님과 천안 제이린 아나율(아나룻다)의

대화속에서 양식(먹이)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설법시간에 졸은 아나율은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고 절대

잠을 청하지 않기로 결심한 뒤,

눈병이 나자 이에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고

절대 잠을 청하지 않기로 결심한 뒤,

눈병이 나자 이에 부처님께서

아나율에게 훈계하여 말씀하신다.


“아나율이여, 그대는 자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양식에 의해서

존재하고 양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눈은 수면을 양식으로 삼고,

귀는 소리를 양식으로 삼고,

코는 향기를 양식으로 삼고,

혀는 맛을 양식으로 삼는다.

내가 설하는 열반에도 또한 양식이있다.”


“부처님이시여, 

그럼 열반은 무엇을 양식으로 삼는 것입니까?”

“아나율이여, 열반은 불방일을 양식으로 삼는다.

불방일에 의해서 사람들은 곧 열반에 이르게 된다.”

그러자 이나율은 다시 부처님 앞에서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눈은 수면을 양식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아직 저는 수면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양식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결국 아나율은 눈이 멀게 되었다.

그러나 천안(天眼)을 얻게 되었다.

(《증일아함경》제 31권, 역품(九品):《부처님의 가르침》,불교시대사, 193쪽 )


이처럼 불교에서 설하는 먹이,

양식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을 자라게 하고

유지시켜 나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지 이 육체를 유지시켜 주는

음식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풍요의 계절, 식욕의 계절 가을에

불자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먹이,

양식으로 하여 무엇을 자라게 하고

무엇을 유지시켜 나가겠습니까?

 

 


1년에 한 권 이상의 불교 경전을


세간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이 독서의 계절 가을에 부처님 말씀을 통하여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처님 말씀이 담긴 책을 통하여 

모두 간직한 부처님 씨앗(佛性)을 키워 나갈 때,

그 부처님 말씀은 다른 무엇보다도

훌륭한 양식이 될 것입니다.

(경전 독송에 대한 공덕은 《법회와 설법》제 33호, 1998,2월호 참조)


그런데 불자들이 평소 신행생활에서

‘가장 결핍을 느끼는 것들’ 중의 하나가

쉽게 와 닿는 경전의 부족이라고 합니다.

‘한자로만 되어 있는 불교 경전을 어렵기만 하고

한글로 된 경전이라 하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라고 합니다.

(《법회와 설법》제 33호, 1998,2월호)

그래서 좀 더 쉽게 와 닿는 불교 서적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여기에 계신 불자 여러분도

공감할 내용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러한 독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다소 반대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불교서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문을 살펴보고

서점(특히 불교 전문 서점)을 둘러보며,

다양한 내용의 많은 불교서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책은 여타의 책과 더불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꾸준한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고

유익한 불교서적이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한 독자의 의견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우리는 계속 고정된 관념으로

불교서적은 어렵고, 쉬운 책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당장 서점에 들러 보십시오.

일상생활과 관련되어 서술하고 있는 경전 이야기,

자신의 신행생활을 진솔하게 언급하고 있는 수기,

불교문화에 대하여 재미있게 구성한 사적들,

그 정도의 책들이라면 최소한 이번 가을은

부처님 말씀으로 마음을 풍족하게 할 수 있으며,

불교서적이 너무도 없다고만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마음에 안 드는 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왜 책장사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불교 서적의 내용이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불자들도 너무 불교 서적

읽기에 인색하지 않은가 합니다.

여기에 계신 불자 여러분 가운데 1년에 한 권이라도

본인이 직접 서점에서 불교서적을 구입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불교에 관한 책을 낸 저자가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진짜 불자들은 너무도 책을 안 읽는 것 같아.

5년 전에 책을 냈는데, 아직도 초판이 서적에 있어”

저는 어떤 내용인가 하여 구입해 보니,


그렇게 어려운 책도 아니고,

부처님 당시의 모습을 언급한 책이었습니다.

책 제일 뒤편에는 ‘초판 1쇄’라는 글자 외에

다른 숫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너무 불교 서적 구입에

인색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유익한 책을 1년에 한 권씩

구입해 읽는다고 하면,

더욱 훌륭한 불교 서적이 나오고,

그 만큼 불교가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터전이 조성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쓰여진 책을 귀하게


“사하(沙何) 중에 많은 악귀와 열풍이 있어

만나기만 하면 곧 모두 목숨을 잃으니,

하나도 온전한 자가 없도다.

위로는 나는 새도 없고

아래로는 달리는 짐승도 없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간 데를 몰라라.

건널 곳을 찾으려 하나 짐승도 없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간 데를 몰라라.

건널 곳을 찾으려 하나 찾을 수 없도다.

다만 죽은 사람의 마른 뼈로써 표식을 삼을 뿐이라.”

이는 중국 동진 시대 법현스님(339?~420?)이

걸어서 인도까지 구법의 길을 다녀온 것을

서술한 《법현전(法顯傳)》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그 옛날 스님들은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부처님 말씀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반도로,

또는 이도에서 한반도로 전하고 배워 왔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 있고,

또 그렇게 힘들게 가져온 경전이기에,

우리 조상들은 경전을 함부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경전을 보기 전에는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으며,

고요하게 앉아서 입정을 하고

개경게(開經偈)를 외웠습니다.

경전이 있는 곳에는

어떤 불필요한 물건을 두지 않았고,

뒷간을 다녀온 뒤에는 손을 깨끗이 씻고

경전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한순간 한 동작,

경전을 삼보 가운데 하나인 법보로서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언제나 경전을 지니고 다니면서

때때로 읽고 깊이 음미함으로써

부처님 말씀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보았던 일입니다.

고물 장수가 수레에 여러 고물과

여러 헌 책을 싣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수레 속에 경전 몇 권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어느 아주머니가 그 수레를 멈추게 하고,

그 경전 갑을 치른 뒤,

한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에 경전을 이렇게 고물 취급을 하다니!”

저는 그 몇십 년 전의 그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슨 영문인지 그 경전을 가지고 종종 걸음으로

집을 향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말입니다.


불교경전을 포함하여 여러분 곁에 있는

여러 불교 서적들은 쉽게

여러분 손에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부처님의 고행 시절부터,

구법 스님들의 험난한 구법 길에서,

수많은 난리 속에서 불법을 지켜 온 불자들의

얼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비록 어찌 보면 쉽게 씌어진 신행수기일지라도

그 속에는 진솔한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씌어진 책을 소중히 여기라고 해서,

책장에 고이 간직해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늘 가까이 두고 부처님 말씀이 향기롭게

풍겨 나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처님 말씀이 씌어진 책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책보시를


끝으로 오늘날에 걸맞는 법공양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널리 전하는 것만큼

크나큰 공덕이 없을 것입니다.

경전 사경을 하는 것도 스스로의 수행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 당시 인쇄술이 미약한 사항에서

부처님 말씀을 널리 전해졌을 것입니다.

오늘날 탑 속에서 발견되는  경전들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불교서적을 구입하여 읽는 것도 넓게 보면

부처님 법을 더욱 널리 전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익금이 불교문화의 발전을 위해

재투자된다면 그 공덕은 더욱 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법을 접하기 힘든 군부대,

교도소, 고아원 등에 부처님 말씀이 담긴

불교서적을 보내는 것도 이 시대에 맞는

크나큰 법공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 관련 잡지책이나 신문을 보며,

군대포교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실히 전법 교화에 힘쓰는 군법사 및

군종병들이 불교서적에 대한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힘을 필요로 하는 그곳에

조그마한 도움을 준다면 그것이

바로 생활에서 실천하는 보시행이요 자비행입니다.


불자여러분!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무엇을 양식으로 하여 정진할 것인지

여러분의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작은 실천이 큰 공덕을 여러분에게 던져 줄 것입니다.

| 글쓴 날짜 | 2010-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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