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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래장사상이란 무엇인가?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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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성과 여래장의 의미


먼저 불성(佛性)과 여래장(如來藏)의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불성(buddha-dh tu)’이란 불(佛)의

본질 혹은 본성과 같은 말입니다.

모든 중생에게는 불과 같은 본성이 있으며,

이것은 중생이 장차 성불할 수 있다는 의미로

곧 불(佛)의 인(因), 불(佛)이 되는

인(因)이라고 설명됩니다.


여기서 성(性, dh tu)과 인(因, hetu)은

동의어입니다. 

또한 같은 의미에서 ‘여래(如來)의

태아(胎兒)’(tath gata-garbha)라 불리며,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한역되고 있습니다.

여래장이라는 말은 ‘여래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중생이 여래를 안에 감추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중생이 여래(佛)가 될 수

있는 요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직 여래가 되지 못한

‘여래의 태아’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불(佛)의 인(因)’

곧 불성(佛性)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래장경(如來藏經)』에서 최초로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열반경』에서는 이 교설을 이어받아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有佛性)’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여래장’이라는 말 속에는 여래와

동등한 본질, 불성이 감추어져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즉 소유자가 아직 그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중생들은 무지와 번뇌에 덮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현상, 즉 무량한 번뇌에 뒤덮인

여래장을 나타내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뜻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불성’이라는 말보다는 ‘여래장’이라는 말을

인도인들이 더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용어의 역사적 성립 순서,

용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풍부함,

그리고 인도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들도 오늘날 이것을

‘여래장 사상’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래장 사상의 위치


인도의 대승불교는 중관과 유식의 두 종파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고대로부터의

전통적 견해이며, 이것은 티베트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여래장사상은 중관 · 유가유식 이외에

독립된 학설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래장 사상이 학설로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능가경』에서는 ‘여래장설(tath gatagarbhav da)’

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그 사상의 내용을 간추리고,

그것을 외도(外道)의 교설인 ‘아트만설( tmav da)’과

비교하며 그 상위점(相違點)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예를 그 증거로 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래장경』을 비롯한 몇몇의

대승경전이나 논전(論典) 속에서 우리는

여래장설이 전개되고 있는 계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창자의 인맥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사상을 설한 대표적인 논전으로는

『보성론(寶性論)』이 있으며,

그 저자를 중국에서는 견혜(堅慧, Saramati)

라고 전하고 있지만, 이 사람을 우리는

인도불교사에서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티베트의 전승에 의하면,

이 『보성론』은 미륵·무착에게로

귀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논은 유가행파(瑜伽行派)의

것이 됩니다.

한편 보성론과 유사한 내용을 가진

『불성론』이란 저술이 한역되어 있는데,

그 저자가 세친(世親)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여래장연기종(如來藏緣起宗)의

대표적 저술로서 중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기신론(起信論)』은 마명(馬鳴)의

저술이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그것을

2세기 불교시인과 동일인이라고 보는

학자는 거의 없으며, 대체로 가탁(假託)

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외의 인명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보성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술어는

분명히 유가행파의 것이며,

여래장설은 그 경전 작성의 단계는

어떻든지 간에 이미 보성론에서 유가행파에

소가는 사람의 손에 의하여

조직화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가행파의 중심 학설인 유식설은

조술한 논서에 여래장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다카사키 지키도는 보성론 이후에

유가행파의 내부에서 이 사상을

존중한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에 유식설을 전한 학장들

중에서는 진제 등이 이 계통에 속합니다.

한편 보성론의 저자는 중앙아시아에서

출토된 8세기 무렵의 범문 단편에서는

미륵으로 되어 있지만,

현장이 인도에 들어간 8세기

이후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래장 사상이 유가행파에

완전히 흡수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학파의 형성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학설로서의 독자성은

역사적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 글쓴 날짜 | 2010-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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