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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대한이 주는 가르침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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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여러분 안녕하세요.

2015년 새해에도 하시는 바 모든 것이 원만히 성취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4절기 가운데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 들어있는 1월은 연중 가장 추운 달입니다. 혹한, 한파라는 말을 흔히 쓰듯이 매섭고 혹독한 추위가 모두 1월에 들어있지요. 소한은 작은 추위, 대한은 큰 추위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한이 대한보다 좀 더 춥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는 재미있는 속담들이 있습니다.

양력으로는 새해가 시작됐지만 1월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섣달이고,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에 오는 절기입니다. 이 추운 겨울,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섣달에 불자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할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따뜻한 기운을 전하는 계절

 

겨울의 모진 추위가 사람들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든다는 말을 쓰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작용을 들여다보면 이와 정반대입니다. 겨울날 난롯가로 달려가듯이, 추운 겨울이 되면 누구나 따뜻한 온기를 찾고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향하게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겨울이 시작되면 주변을 돌아보며 가난한 이들을 챙기고 외로운 이들과 마음을 나누지요. 이것이 바로 겨울이 주는 역설이고, 또 극과 극이 통해서 균형을 이루는 진리입니다.

우주자연의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땅속이나 동굴 속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지요. 만약 한겨울에 땅 속이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바깥 날씨와 기온이 같다면 아마 지구는 얼어서 터져버렸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여름의 폭염이 땅속에서 계속된다면 지구는 열기를 이기지 못해 폭발할지 모를 일이이지요.

사람의 몸속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바깥이 더울수록 속은 시원하고 바깥이 추우면 속은 따뜻합니다. 그래서 여름에 덥다고 찬 음식을 먹다가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이 들어가는 위장이 서늘한 상태에서 다시 찬 기운을 맞게 되니까 설사를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요. 또 겨울이면 거리에 술을 먹고 토한 흔적을 많이 보게 됩니다. 술은 뜨거운 기운을 지닌 음식이라서 위장의 더운 기운을 더욱 뜨겁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주자연의 이치처럼 우리 인간도 혹한의 겨울에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왔기에 더불어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를 세상살이에 적용하면, 모든 존재는 서로서로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거대한 인연의 망 속에 서로 얽혀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어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나만 홀로 서려 한다면 나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겠지요.

옛날에는 깊은 산속에 작은 토굴이 많았습니다. 특히 눈 때문에 탁발을 다니기 힘든 겨울에 스님들이 그곳에 한철 머물면서 수행하곤 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폭설로 산에 갇혀 토굴을 찾아가면 반드시 그곳에는 식량이 있어서 한동안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토굴에 머물다가 날이 풀리면 그 스님은 절대 그냥 토굴을 떠날 수가 없지요. 이듬해 겨울 폭설에 갇혀 그곳을 머물게 될 누군가를 위해 식량을 마련해놓고 떠나기 때문에, 토굴에는 늘 식량이 떨어지지 않았던 거지요.

다음 사람의 겨울나기를 위한 탁발수행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듯이, 따뜻함은 주변에 널리 확산되는 힘이 있습니다. 요즘 말하는 ‘선행의 릴레이’처럼 여러분의 따뜻한 기운이 주변에 전달되어서 서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널리널리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겨울추위가 매섭고 혹독할수록 우리들 마음에는 더 따뜻하고 밝은 모닥불을 지핍시다. 이 세상에 나서 한철을 지냈다면 토굴양식은 마련해놓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위에 대처하는 불자의 자세

 

겨울의 추위는 역경이나 번뇌를 뜻하는 말로 많이 새기곤 합니다. “소한의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소한․대한에 객사한 사람은 제사도 지내지 말랬다”는 속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도 혹한을 견디듯 역경과 고비를 잘 이겨내자는 뜻이 담긴 것이지요.

어느 날 당나라의 동산양개(洞山良价) 스님에게 제자가 물었습니다.

 

“몹시 덥거나 추울 때, 어떻게 하면 그런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습니까?”

“더위와 추위 따윈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이 있습니까.”

“물론이다. 더울 때는 더위에 뛰어들고, 추울 때는 추위에 뛰어드는 거지.”

 

선문답에는 역설적 표현이 많지만 그 본질을 꿰뚫어보면 역설이 아니라 직설입니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만 한다면 영원히 이겨낼 수 없지요. 역경과 번뇌 또한 부딪히는 데서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나옵니다. 스님은 추위를 이기는 방법을 묻는 이에게 ‘추위에 뛰어드는 것, 그래서 자신과 추위가 하나 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닥치는 역경과 번뇌도 떨쳐내려고만 하면 더욱 깊어지는 법입니다.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말입니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문제를 나와 별개의 것으로 보지 말고, 내 마음 속에서 그 정체를 철저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 문제는 ‘지금의 나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기에 내 안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스스로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법은 각각 일정한 모양이 없기 때문에 땅이 바뀌어 혹은 물의 모양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아교와 밀랍이 불을 만나면 녹아내려 축축한 모양이 되는 것과 같고, 물이 추위를 만나면 얼어서 단단한 얼음이 되는 것과 같다. …중생도 역시 그와 같아서 악이 선이 될 수도 있고 선이 악이 될 수도 있으니, 온갖 법은 일정 한 모양이 없다. 그러므로 신묘한 힘으로써 변화하는 것이다. 이는 진실이요 거짓 이 아니니, 만일 본래부터 각각 일정한 모양이 되어 있다면 변화할 수가 없다.”

『대지도론』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대지도론󰡕에서 말하듯이 그것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딱딱한 얼음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본래 부드러운 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번뇌의 실체를 하나씩 알아가노라면 우리는 번뇌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양혜충(南陽慧忠) 스님에게 어느 스님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중생과 부처는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어리석으면 다르고, 깨달으면 다르지 않지요.”

“어째서 다르지 않습니까?”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지만 녹으면 다시 물입니다. 어리석으면 얼어붙은 중생이 지만 녹으면 부처인 게지요.”

 

물은 액체지만, 때로는 얼음과 같은 고체가 되기도 하고 기체인 수증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의 본질이 H2O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도 현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고 악한 중생이라도 그 본성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얼음도 본래 유연하게 흐르는 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얼음 또한 녹아서 물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러니 ‘중생이 곧 부처요, 번뇌가 곧 깨달음’입니다. 중생이나 번뇌는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자각하면 부처로, 깨달음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한을 이겨내는 겨울보리처럼

대한은 24절기의 맨 마지막에 옵니다. 대한 다음에는 입춘이 오면서 봄이 시작되지요. 대한이 들어있는 양력 1월은 겨울의 마지막이자 한 해의 마지막인 섣달이니 참으로 의미 깊은 때라 하겠습니다. 겨울의 어원은 집에 거처한다는 뜻의 ‘겨슬[居室]’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때의 집은 나 자신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겨울이 한 해의 수확을 잘 갈무리하면서 집안을 돌보는 때이듯이, 우리도 자신의 내면을 다지는 때로 삼아야겠습니다.

이 시기에는 농가에서 보리밟기를 합니다. 보리는 가을에 파종을 하고나면 곧 뿌리가 내리고 파란 싹이 나서 겨울을 나게 됩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면 땅이 얼어서 부풀어 오르고, 보리뿌리가 바깥으로 나와서 죽기 쉽습니다. 그래서 뜨지 않고 땅에 뿌리가 잘 내리도록 밟아주면 뿌리가 튼튼해지고 이듬해 알곡도 많이 영급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혹한을 뚫고 푸른 보리 싹이 자라나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이치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겨울의 추위와 역경을 잘 이겨낸 자만이 다가오는 봄을 잘 맞이할 수 있겠지요.

어느 할머니가 열심히 절에 다니면서 지성으로 부처님을 받들었지만, 스님의 법문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스님께 부탁했지요.

“스님, 제가 일자무식이라 말씀이 어렵고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간단하고 좋은 구절 하나만 가르쳐주세요.”

즉심즉불(卽心卽佛), 이 네 자만 정성껏 외우시면 크나큰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하루 종일 이 구절을 외웠는데, 스님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즉심즉불’을 ‘짚세기불’이라고 염불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마음으로 ‘짚세기불’을 염불한 할머니는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법문을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던 일자무식의 할머니가 ‘일심삼매 혹은 일행삼매’의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이룬 것입니다.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 있어서 봄은 멀기만 한 것 같지만, 양(陽)의 기운은 이미 동지부터 싹트고 있었습니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길지만, 그 다음날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양의 기운이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소한을 지나 대한이 되면 양기가 충만해져서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때입니다. 땅 위에는 아직 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라도 땅 아래에는 가득한 양기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모두 불성(佛性)의 싹을 품고계신 분입니다. ‘겨울보리’가 혹한을 겪어내고 푸른 싹을 틔우듯이,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다가오는 봄에는 저마다의 원을 꽃 피우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 강조해서 말씀드리자면 ‘겨울보리’는 내 몸에 잠재해 있는 깨달음의 씨앗입니다. 봄이 되면 우리 함께 깨달음의 씨앗을 내 가족, 내 이웃, 내 마을, 우리나라 전체가 완전한 인격이 성숙한 행복한 나라와 세계가 되도록 실천해 봅시다.

 

 

| 글쓴 날짜 | 2015-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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