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부처님같이
오늘은 음력 12월 8일 성도재일입니다.
전국의 모든 수행도량과 불자들은 부처님의 성도됨을
기리고 축복하며 정진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부처님 같이….”
출가 수행자들은 7일 7야 눕지도 잠자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화두 일념으로 용맹정진에 임할 것입니다.
출가 수행자처럼 모든 일을 제쳐놓고 정진에
임하지 못하는 우리 불자들은 성도일 하루 만이라도
자신을 찾는 정진에 동참하여 위없는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어 등불을 통해서 무명을 밝히고,
꽃을 통해서 만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과일 공양을 통해서 보리과를 이루고,
정성스런 차 한 잔을 통해서 감로다의 신비로움을 맛보시고,
여러 가지 음식 공양을 통하여 부처님의 법열을 느끼어
선열미를 이루시는 법회를 열고 부처님 되신 날을
축복하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한 진실된 축복과 기도는 정진이며
이것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행으로, 말로 이어질 것입니다.
원래 세상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지만
중생에게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수행자 고오타마 싯달타 태자가 부처님이 되신
성도일이기에 우리 불자들은 오늘을 계기로 부처님이
손수 이 땅에 나투시어 경험하신 깨달음의 과정과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시대 이 땅의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 욕망과 번뇌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마음과 그리고 더불어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자비로운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지 함께 정진하며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이것은 대각(大覺)이라는 출중한 인물을 낳은
대원(大願)과 대비(慈悲)라는 두 부부의 태몽과 태교의
사연을 들어보는 재미나는 시간일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시간이 바로 우리 불자들이 좋아하는
팔자를 고치고 업장이 소멸되는 지름길이며 또한
소원이 성취되고 복덕이 구족하는 올바른 길이기도 하겠지요!
중생들의 영원한 안락을 위하여
잘 알려진 대로 부처님의 태어남도 그리고 출가 동기도
만 중생을 위한 대 자비심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불자들은 예불 때마다 부처님을
“삼계도사 사생자부”라고 지극히 예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 부왕과 함께 농경제에 참가하여 먹고 먹히는,
쫓고 쫓기는 생존경쟁과 양육강식의 세상을 목격하였습니다.
자신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측은지심에서 명상에 잠기는가하면,
동서남북 사대성문 밖으로 행차하여서는 생노병사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보시고는 번민하며 명상에 잠깁니다.
“중생계의 영원한 안락과 평화는 불가능한가?.”
부인인 야소다라의 우아함도,
아들 라훌라의 귀여운 재롱도
그리고 날마다 왕궁의 삼시전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궁녀들의 가무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하였습니다.
오직 자신의 문제요, 만 중생들의 문제이기도 한
윤회를 끊고 생사대사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자신과 세상의 연원한 안락을 위함이
눈앞에 펼쳐진 부귀영화를 누리고 장차 권력과 명예가
보장된 국왕의 자리를 찾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임을 자각하고는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카필라성을 넘어 수행의 길을
나선 싯달타 태자는 아노마강을 건너 아누피야 숲속에서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먼 길을 걸어 당시 사상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바이샬리와 라즈기르(왕사성)을
거치는 동안 여러 선인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가야에 도착하여서는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모든 가르침이 바른 깨닫음(정각)에 이르는
확실한 길이 아님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곤 이 곳 니련선하 강 건너편 고행림에 자리 잡아
자신의 수행태도를 결심하고는 고행에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지내기를 어언 6년. 고행에 몰입하고 있던
어느 날 하늘의 천녀들이 나타나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리라(악기)의 선을 너무 팽팽히 당기지 말라,
선을 너무 팽팽히 당기면 그 선은
끊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고 선을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 말라.
너무 느슨하면 노래소리는 울려나지 않을 것이니….”
싯달타 태자는 천녀들의 노래소리에 많은 교훈을 얻고서는
곧 궁극적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행을 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심·신의 조화(調和), 본질과 방편의 상통(相通),
유와 무의 상생(相生)의 이치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는 착한 소녀 수자타의 유미죽을
공양 받아 기력을 회복하면서 다시 부다가야의
금강좌 필발라나무(부처님이 성도 후 이
나무는 보리수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늘 아래에 쿠사라는 부드러운 들풀
(이 풀은 길상이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바쳤다하여
성도 후 길상초라 이름하게 되었습니다.)을
깔고 동쪽으로 자리를 정한다음 싯달타
태자는 스스로 이렇게 다짐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의 육신이 소멸되어도 좋다.
다만 어느 시대에도, 그 누구도 얻기 어려운
일체지를 얻지 못하면 나는 결코 이 자리를 뜨지 않을 것이다.”
마왕 파순의 유혹
경전(숫따니빠따)에서는 부처님이 깨닫기 바로 직전
때로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험악하고 무서운 무사로 변장하여
깨달음을 방해하는 유혹과 회유 그리고 폭력의 장면이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악마의 유혹이라는 설화로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팔상성도에서는 “수하항마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깨달으면 마왕 파순은 설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는 온갖 악마들을 동원하여
사력을 다해 부처님의 정각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이들 악마들은 다름 아닌 우리 마음속의 어둠과
미혹 나태와 방일 그리고 퇴굴심과 사행심으로
우리들의 공부와 기도를 방해하는 일체 장애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현의 가르침에서도 “좋은 일에는 꼭 마장이 따른다.”
“매서운 겨울이 있어야 매화 향기가 더욱 향기롭다.”라
하여 땀 흘리고 골몰하는 노력 없이 그리고 난관과
어려움 없이 성취되는 좋은 일은 없으며,
혹 있다하더라도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전에 나타난 마왕 파순의 유혹의 형태를 7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애욕의 마음으로 육체의 쾌락을 즐길 것을
권하고 충동하는 유혹입니다.
둘째로 의욕상실의 마음으로 나태함으로
퇴굴심을 일으키는 유혹입니다.
셋째는 육신을 애착하는 마음으로 헐벗고 굶주림이
대한 공포와 잘 입고 배불리 먹고 싶은 유혹입니다.
넷째는 의존하는 마음으로 요행심과 사행심을 일으키는 유혹입니다.
다섯째는 비겁한 마음으로 아상과 중생심이 발동하여
자신을 학대하고 세상을 비관하는 유혹입니다.
여섯째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바심을 일으키는 유혹입니다.
일곱 번째로 분노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차별하는
이기적인 유혹입니다.
이러한 악마의 유혹이라는 설화는 현실에서
우리가 중요한 결단을 내리고 일을 성취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겪게 되는 것으로
부처님도 똑 같이 겪었으며 부처님은 이와 같은
마구니들의 온갖 유혹과 회유를 물리치고 정각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향한 원력과 연민심이
한량없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정진) 또한 한량없는 이치입니다.
이로서 부처님은 처음 출가동기인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대자유인이 되었으며, 육도 윤회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해탈인이 되었으며, 중생들의 일대사 인연인
생사를 요달하여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부이신
구원자가 되었으며, 세상의 일체지를 훤히 알아
인과에 매하지 않는 선각자가 되었습니다.
똑 같이 살면서 고통 받고, 한치 앞도 못보고,
윤회하는 것은 깨닫지 못한 탓이라 하니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성도일을 맞이하여 정진하는 불자들에게
팔만사천가지 한량없는 가르침을 다 일러 줄 수 는 없으니
몇 가지만 되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깨달음은 창조된 것이 아니고 발견된 것
진정한 깨달음의 내용과 경지는 자신이
깨달아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깨달은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을 통해서 알아본다면
먼저 깨달음은 발명한 것이 아니고 발견하였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각의 당체(당체)인 진리는 없었던 것을 창조하거나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함께 있어 숨쉬는 공기와도 같은,
빛과 어둠과 같은, 우리의 삶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각했다고 말함이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불교의 영원한 생명이요,
믿음과 수행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불성(佛性)
즉 내 자신이 바로 부처요,
이 땅이 바로 정토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자각을 일러 경전에서는
“눈먼 사람이 눈뜸과 같고” “자신의 방에 감추어진
값진 보배를 두고도 거러지 생활을 하던
유복자가 부모님의 유산인 그 보물을
발견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철저한 자기확신과 의식전환이라는
사실에 맞추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부처님의
6신통에 맞추어 깨달으면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 생겨서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
재물과 명예와 수명을 관장하고,
인과에 벗어나 선과 악,
행과 불행을 좌우하는 힘을 지닌 슈퍼맨으로 착각합니다.
아니면 깨달은 부처님이 무당집의 복장수나
지옥과 극락을 심판하는 염라대왕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예가 어린애들이나 하는 우스운 일 같지만,
오늘날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을 바라보는 신앙형태의
하나인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것 또한 우리의 불성 존재를 흐리게 하는 유혹의 한 형태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부처님의 가르침(大覺의 내용)은
우리 모두가 불성 존재인 이미 구원된 부처라는
사실과 이 땅이 바로 정토라는 대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지난 86년 성철스님께서
대중들에게 행한 법어 한 대목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시비와 선악이 본래 공하고 악마와 제불이 본래 한 몸입니다.
생사 열반은 꿈속의 꿈이요, 이해득실은 거품 위의 거품입니다.
진여의 둥근 달이 휘황찬란하여 억천만 겁 변함없이 일체를 밝게 비추니
사바가 곧 정토입니다.
물거품인 이해득실을 단연히 버리고
영원한 진여의 달을 항상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만법이 청정하여 청정이란 이름조차 찾아 볼 수 없으니
가없는 이 법계에 거룩한 부처님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들판의 괭이 소리 공장의 기계소리 함께 같이 태평가를 부르니
푸른 언덕 잔디 위에 황금빛 꽃사슴이 즐겁게 뛰놉니다.”
생사 대사의 요달(了達)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우리가 자신의 일생을 크게 나눈다면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이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생일날이고,
두 번째가 자신과 똑같은 육신을 낳는
계기가 되는 결혼 날이며,
세 번째가 자신의 육신이
이 세상과 하직하는 죽은 날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의지해서 이 세상에 왔지만
어디서 왔는지 온 곳을 모르고,
자신과 똑같은 생명체를 낳았지만
그 아이가 어디서 어떤 인연으로
자신에게 왔는지 모르며,
그리고 다 낡아진 육신을 버리고 떠나면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우리는 이를 일러 생사대사라 합니다.
태어남과 죽음 즉 오고 가고, 만나고 헤어지고,
왔다가 가는 이 문제가 제일 큰일이며
근원적인 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출가도 이 생사대사에서의 해탈이며,
스님들이 출가의 뜻을 일러 생사대사를
요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생과 사의 요달은 번뇌와 보리,
중생과 부처를 꿰뚫는 일이며, 밝음과 어둠,
희와 비, 행과 불행, 지옥과 극락을
자유자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에 이러기까지
모든 선각자들은 이 생사대사의 요달에 목숨을 걸고
수행하여 대각을 이루었으며,
오늘의 용맹정진도 끝내는 이 생사대사를
요달하는 일체지를 구하고자 함입니다.
부처님은 생사대사를 요달하여
인과에 매하지 않는 길,
세상의 모든 일을 훤히 알아
자유자재하는 길은 집착하지
않음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반대로 중생이 고통받고 불안하고
번뇌하는 근원에는 집착이라는 병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연기법을 깨달아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 고통과 번뇌의 근원을 관(觀)하여
보니 거기엔 아집이라는 집에 집착이라는
뱀이 또아리를 틀고 무명업식을
쏟아내어 고해(苦海)라는 사바세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아함경에서 “나의 가르침은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다”하여
집착하지 말 것을 경계하며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렀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는 생각하기를, ‘바다 건너 저 쪽은 평화로운 땅이다.
그러나 배가 없으니 어떻게 갈까?
갈대나 나무로 뗏목을 엮어 건너가야지’
하고서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너갔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바다를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뗏목은 내게 큰 은혜를 주었으니 메고 가야겠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대해 비구들이 한결같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해야 자기의 할 일을
다 하게 되겠는가.
그는 바다를 건너고 나서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뗏목으로 인해 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너 왔다.
다른 사람들도 이 뗏목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물에 띄워 놓고 나는 내 갈 길을 가자’
이와 같이 하는 것이 그 뗏목에 대해서
할 일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뗏목의 비유로써, 교법을 배워
그 뜻을 안 후에는 버려야 할 일이지
결코 거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교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이 진리(법)다”라고
주장한다면(집착)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며, 누군가 “나는 깨달았다”라고
외친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무유정법(無有定法)이
최상법임을 설해놓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내려놓는 공부,
비우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하며 세상만사
모든 근심 걱정과 장애가 집착이라는 병에 근원하며,
채우고 모으는 병에 기인함을 오늘 이 자리에서
정진하면서 철저히 사무쳐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무상(無常)은 보배중의 보배
집착 말라는 것은 세상이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불자여러분들은 이 “무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처님의 근본교리 삼법인에 ‘제행무상 ’이라 하여
이 세상엔 영원한 것, 생멸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명예나 권력. 재물 그리고 젊음과 미모 목숨까지도
놓으려하지 않고 상견(常見)에 집착하여
패가망신하고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우리가 무상이라는 진리를 대하면서
“상견(常見)”보다 더욱 무서운 병통이 “단견(斷見)”입니다.
무상이라는 진리 앞에서 허무와 실의에 빠지거나
염세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짜피 죽으면 다 끝나는 인생 애써 노력하며
살아서 뭘 해!”(한탕주의)
“선행이니 악행이니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는 꿈속의 꿈 노릇이니 되는 대로 살자.”(막무가내파)
“해봐야 결국엔 모두 헛일 아닌가.”(허무주의)
이와 같이 우리는 무상 앞에서 상견과 단견을
내어 집착과 어리석음에 빠지는데 부처님은
무상이 자신을 정각(正覺)케한
보배중의 보배라 하였습니다.
무상계(無常戒)에 “무상이라는 것은
열반으로 가는 요긴한 문이요,
고해를 건너는 자비로운 배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들도 무상을 바탕으로
해탈을 이루었고, 모든 중생들도 무상에
의지해서 고해를 건널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무상은 곧 생명이며 불성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눈에는 무상이 덧없고
허무해보이지만,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모든 존재가 피고지고 살아 있어 환희하고
춤추는 생명으로 꽉 찬 불성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땅과 우리 자신이 바로
그런 것임을 보이셨습니다.
부처님의 일대 시교인 팔만사천 가르침이
모셔진 해인사 장경판전 법보전 법당 입구
양 기둥에 주련이 있는데 이 글귀는 자못
우리 중생들이 팔만대장경에 접근하는 문지기처럼 서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들에게 깨달음에
접근하는 시각을 확 바꿔 놓는 글귀이며,
팔만장경을 한마디로 줄여 놓은 말이라 생각됩니다.
내용인즉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로
“깨달음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다시 말해 “부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매
“현재 생사가 있는 바로 이 자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꽃은 피고 지고, 생과 사로 변화무상한 이 곳이
바로 진리의 땅이요. 부처님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현의 말씀에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 나야한다고 했고
육근이 도적이고 보배니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지은 중생살이,
삼업으로 벗어나야함을 역설하였습니다.
오늘 부처님 되신 날, 여러분들이 용맹정진을 하는
의의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시겠습니까!
원(願)은 깨달음의 신비로운 약
부처님은 출가전 농경제를 통해서 약육강식의
세계와 성문 밖의 행차를 통해 중생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시고 이렇게 발심합니다.
“중생들의 영원한 평안과 안락은 어디이며? 어떻게 인가?”
그리고 한량없는 자비심을 바탕으로
대원(大願)을 세워 출가하여 대각을 이루었습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원은 대승불교에서
모든 불보살님들의 발원이 되어 아미타불 48원,
약사보살 12대원, 보현보살 10대원 그리고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의 중생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할 때까지 당신의 원을 멈출 수 없다는
불·보살님의 본원(本願)이 되었습니다.
원(願)―.
이것이야 말로 화석화된 믿음에,
머릿속에 갇혀 있는 지식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비로운 약입니다.
앎과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엔 반드시
의심과 회의가 따르게 됩니다.
의심이 따르면 이미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것과
일체의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암흑의 중세신학에서나
가능한 믿음관입니다.
절대적 믿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 한 것이며 믿음에는 온갖 의구심과 회의,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수행을 계속할 수 있는
불퇴전의 원동력은 어디서 가능할까요?
믿음을 맹목적이거나 통속적이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믿음의 대상이 형이상학적인 타자가 아닌
내 안의 무엇이 되게끔 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믿음을 살아 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원입니다.
자비(慈悲)는 진리를 살아내는 것
이 원은 일체 중생을 공경하고
위하겠다는 자비심입니다.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고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서원 즉 자비는 타자에 대한 존재론적
감수성에서 비롯합니다.
감수성이라 한 것은 자비행은 알아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느껴야만
이루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모든 존재가 연기연멸(緣起緣滅)이며
둘이 아님을 가르쳐 이해시키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나 아닌 타자를
그리고 자연을 내 몸처럼 느낄 수 있게
할 것인지는 원과 더불어 자비행에 있습니다.
자비행은 나의 앎이 정말로 틀림없는 보리지인지
혹여 자기도취의 일종은 아닌지
검증하는 절차이기도 합니다.
자비란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진리를 살아낸다 함은 진리가 한낱 허울 좋은
형이상학으로 추상화되는 것을 막는 장치인
동시에 모든 진리는 반드시 일상의 삶을 통해
증명될 수 있어야만 유효하다는 사무침의 표현입니다.
제 몸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진리라면
그것은 가식이며 허울에 불과합니다.
자비를 살아낸다는 것은 머릿속의 무아와 연기를
일상화해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자비는 추상을 현실화함이고 보편을 구체화함이며
믿음을 검증하는 것으로 마침내 이 둘 사이의
경계조차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불교의 믿음은 그 자체의 이론적 완벽성이나
신심의 정도로 그 가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철저히 살아낼 수 있는가 하는 자비행에 달려있습니다.
살아지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 살아내는 사람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지는 사람과 살아가는 사람과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것은 아는 대로
믿는 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앎이란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내도록 하는 힘,
곧 애타는 바람(원)입니다.
바람이 사무치면 믿음이 되고 이윽고
그것을 살아내도록 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너의 앎이 진리인지 나의 앎이 진리 인지
아니면 모두다 일리(一理)에 불과한지는
그 이론적 정교함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과연 그것을 알면서도
살아낼 수 없다고 한다면 나의 삶은
한낱 미망에 갇힌 한살이일 뿐입니다.
살아낸다는 것은 이미지에 불과 했던 것을
구체화 해내는 작업일 것입니다.
화가의 구상이나 작곡가의 영감은
캔버스에 옮겨지고 피아노 건반 위를 오간
다음에라야 비로소 작품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람과 믿음 역시 삶이라는 역정을 통해서만 완성됩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불완전한 믿음을 갈고 닦아
완결을 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결된 믿음을 중생의 현실 속에서
확인하고 구현해나가는 즉 살아내는 절차가 됩니다.
자비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심각한 오해는
그것을 윤리적, 도덕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버릇입니다.
자비는 결코 도덕적 미덕이 아닙니다.
자비는 윤리적 맥락이 아니라 존재론적
맥락에 서 있어야 합니다.
자비는 미덕이나 권장 사항이 아니라,
일종의 검증 과정입니다.
자비는 단독자로 깨칠 수 없다는,
혼자서는 결코 부처의 땅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입니다.
‘너는 깨달았는가?’ 혹은 ‘너는 신심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을 때 말로 할 수 있는
정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답은 반드시 몸으로 씌어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깨침을, 신심을 살아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자비행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그것을 깨친 뒤에 자연스레 수반되는
행동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당연히 자비행보다는
깨침을 우선시하게 되었습니다.
자비는 위에서 말했듯이 저절로가 아니라
목적지향적인 의지, 즉 바람(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제 막 마음을 일으킨 초심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깨침을 위한 수행이 아니라,
중생을 위하겠다는 크고 굳은 바람(원)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원은 깨침의 집을 짓는 대들보이며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에서 관건은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살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자비의 바람이 없는 믿음, 이 자비의 바람이
삶과 엉겨 붙지 못하는 믿음은 맹목입니다.
실천은 앎에서 말미암는 것이지만
실천이 시작되면 [그간의] 앎은
모두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올바른 앎에는 집착이나 편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이 마음이 곧 부처
오늘 성도일을 맞아 우리불자들은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내려주신 깨달음의 내용을 두고
“이 뭣고!” 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시어 출가동기와
수행과정에서 보여준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고픈,
중생들의 고통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함께
하며 제도하고자 하는 한량없는 원력과
자비심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마왕 파순의 유혹을 물리치는 불퇴전의
용맹정진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자신의 불안과 괴로운 마음을 정화하고
더불어 잘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신비로운 약이 부처님이 보여주신 함이
없는 원력과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정진입니다.
선어록에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하여 선사들이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본심(本心)” “청정심(淸淨心)”이라고요?
물론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런 추상적이고
구름 잡는 소리로는 당신의 가슴에,
이 땅에 부처님을 맞이할 수 가 없으며,
희망이 없어 불안하고 믿음이 없어
회의로 가득 찬 당신의 마음을 안심(安心)으로
채울 수 없으며, 울고불고 병 주고 약주는
중생놀음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란 모든 중생과 함께하고자하는
대원(大願)의 마음이며, 대비(大悲)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즉심시불(卽心是佛)”이란
“모든 중생의 고통과 번민을 대신하고픈
그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성도재일(成道齋日)은
아버지 대원(大願)과 어머니 자비(慈悲)가 낳은
대각(大覺)이의 생일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용맹정진(勇猛精進)이
대각(大覺)이를 잉태하는 태몽이며
태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