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이야기
사람의 일생은 기후와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때는 삶의 폭풍우가 격동하고 지나간 때쯤이 아닌가 한다.
격랑 속에서는 생존의 본능에만 지배당하거나, 그 속에 갇혀 허우적거릴 뿐, 그러니까 치장이나 덮은 살덩이까지 벗어버리거나 발라버린 정체를 드러낸 자신이 거기 있는데, 정작 본인만 그걸 보거나 인식하지 못했을 뿐, 뼈만 남은 자신의 흉측한 실체를 모르고 있거나 안다 해도 의식 밖으로 밀어내 놓아버리고 만다.
제 몸이 죽음에 이르도록 아프면,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말이 있듯, 삶의 증후가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거나, 떨어지고 나서야,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기 마련인가 보다.
때늦은 회한이라기보다, 청산절차를 밟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어둠 속으로 골을 파 들어가지 않는 길이지 않을까, 해서 나는 청산절차라 말하고 싶다.
왠지, 청산이라는 의미에 희망을 걸고 싶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해서 현실 자체가 절대 달라지지는 않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 몸을 정갈하게 씻고 싶거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아마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존의 마지막 희망은 이런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도 저도, 생각하는 일조차 귀찮아 벌써 몇 개월째 놓아버렸을까?
자존의식을 놓아버리니, 물방개가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듯 부질없는 생명 이음만 하고 있다.
양심도 본능일까?
일을 않고 밥을 먹어댄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들쑤신다.
기가 죽어 앞을 정시할 수도 없을 지경이니, 자신이 자신을 의식한다는 일이 가장 두렵다.
모든 생각이 거기에서부터 파생되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리도 아직까진 참 운 좋은 놈이 아닐 수 없다.
굶어 죽거나, 혹독했던 그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 몸 내가 건사할 수 없었을 나이에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살아남았고, 숱한 모진 일을 겪어내면서도 용케 오늘까지 살아남아 있으니 운이 좋긴 좋은 놈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프리카에선 30초마다 말라리아로 죽어 간단다, 그것도 어린 아이가 말이다.
탄자니아며 불가리아 파키스탄, 어디 거기뿐인가 이스라엘은 또 어떻고?
열거하자면 날이 새도 모자랄 판이다.
어디, 어느 때와 비교할 것인가?
지금 살아있는 곳과 때, 이 행운을 말이다.
나는 벌써 세 해째나 옥상에서 화초와 나무를 기르고 있다.
세 해를 벌써라 했다.
환갑 전에 시작해, 환갑을 넘겼으니 어찌 생각하면, 길고 긴 세월이나 진배없기 때문일까?
첫해야 그렁저렁 화분 몇 개 올려놓고, 옥탑방 살이 푹 폐인 마음을 기댈 요량으로, 싹이 자라고, 꽃이 피고, 기를 쓰고 매다는, 열매 맺는 걸 보면서 생존본능을 엿보며, 그거나마 보려고 내 목숨 붙어 있는 까닭을 위로받기 위함이었지 않았나, 는 생각이 든다.
두 해가 지날 때 감당하기 벅찰 만큼 늘어나 있는 화분이, 노동을 요구당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요구당하는 노동이라 말했지만, 자청한 노동이었다고 말해야 옳다.
옥상바닥이란 데가 콘크리트인지라 식물이 뿌리를 박을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곳이라, 한 톨의 흙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 방울의 물이 생명을 이어가는 절대 필수불가결한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현장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면 때가 너무 늦었단 생각에 혀뿌리를 씹을 수밖에 없었다.
헌데 세 해에 들어서면서부터 내가 첫해부터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떨어진 꽃잎을 주워 화분에 올려놓는 것이 옥상바닥을 청결하게 하는 짓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내 삶이 그동안 얼마나 늦터졌던가를 탄식하게 되었다.
흙에 혼이 불어넣어 지는 끝없는 진행, 완성은 끝끝내 진행형인 것을 왜 몰랐던가?
잎이 돋기 시작해서 싱그럽게 자랄 때까지, 자라는 나무가 양분이 더 필요하면 제가 가진 영양분을, 자신을 키워낸 나무에 되돌려주고 매달려 있을 기력조차 남지 않으면, 때 이른 낙엽이 되고, 몸을 썩혀 흙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나뭇잎은 행복하달 거라는 생각이, 요즘에야 샘물이 되어 가슴에 고인다.
어디 잎뿐이랴!
꽃 또한 다르지 않다, 잠시 잠깐 정체를 드러낸 절정의 순간이 지나면 낙화하여 흙으로 돌아가길 갈망했듯, 비로소 귀향하듯 침묵의 평화, 흙으로 돌아간다.
더러 열매를 맺지 않고 떨어지는 꽃의 일생을 드려다 보면, 꽃이 되어 머금은 생명의 기운을 꽃대라는 탯줄을 통해 뿌리에 내려주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양을 엿보게 된다.
씨앗이나 열매로 맺혀 또 다른 시작을 실행하는가 하면, 떨어진 꽃잎 역시 흙으로 돌아갈 자리를 잡았을 때, 흙 위에 몸을 눕힌 그 떨어진 주검, 그 자태가 더없이 아름다운 걸 이제야 안다.
잎이나 꽃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말라 비틀어져 썩어갈 때, 결국은 분해되어 어디론가 흩어지거나 무언가와 뒤섞이겠지만, 그 난감한 여로를 생각하면 속 쓰림이 올라온다.
옥상이 아니고 흙바닥이었더라면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왜 있을까?
내 욕심이 아니었다면 난감한 여정을 가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물길도 이어지지 않는 한정된 화분이라는 교도소에 갇혀 살아야 하는 나무의 생.
어느 것 하나라도 온기가 통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
퍼와 지고 올라온 흙에 묻혀 왔거나, 정처 없이 날아다니다 엉뚱하게 화분 흙에 자릴 잡았거나, 잡초 한 포기라도 배배 비틀려 자라거나, 어울려 작은 세상을 만들어 내는 생명의 목소리가 들린다.
약속의 가을로 가는 과정에 하 많은 뒤척임으로 변해가는 것의 본질은 하나라는 걸 애써 말하려 드는 몸부림을 본다.
세상 어느 것이라도 태양의 기운을 받아 살고 죽어가고, 죽어서도 살아가는 변화는 이어달리기와 같다.
자잘한 생명의 씨앗들이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며 이어 달리는 생명의 광장에 잠시 생각이 머뭇거릴 때, 그 머뭇거림은, 기어이 생존을 의식시키고 만다.
이때 우리는 이정표를 내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얻지 않을까?
생명의 원천인 태양이 하나이듯, 생존의 진리도 하나인 것을 언제나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존이 난전이 아니라, 현실의 자각으로 잔치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 수나 있을까?
옥상에 화분을 올려다 놓고 흙을 올려 나르거나, 물을 길어 올려 그 흙을 적셔줄 때, 뿌리를 내려 그곳에서라도 생명을 부지해야 하는 운명을 결정지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하여 나무는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물을 줄 때를 거르면 기진맥진 몸부림치는 모습을, 신음하는 비명을 들을 때, 나는 덜컥 내려앉는 가슴에 바닥이 없음을 알게 된다.
허우적거리며 무언가를 붙들려 해 보지만, 추락하는 마음은 비단을 찢는 소리를 낸다.
나와 그것들이 출발점이 같은 광장에 서 있음을 본능이 질타의 손가락질을 있는 것이다.
차라리 뚜벅뚜벅 걸어와 멱살을 잡아 패대기를 쳐준다면, 그게 더 낳을 것 같은 때가 있다.
줘야 할 때 주지 못한, 않은, 고통은 나를 한입에 우걱우걱 먹어치울 수 있는 천적과 맞닥트렸을 때와 같다.
절망의 고통, 죄의식의 화마가 순간 죽음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자책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한 톨의 흙, 한 방울의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감한다.
무엇인들 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선도 악도 그 자리엔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자궁, 희망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 작은 화분, 나는 화분을 보면서 그것을 자궁인가, 착각할 때도 있다.
내 삶의 시작도 자궁이었고, 지금 내가 사는 세상도 자궁 속이란 생각에 다다르면 몸이 움칠해진다.
생존의 탯줄은 무엇인가?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숱한 인연은 내 의식과 인식에 관계없이 실핏줄처럼 연결된 것, 그것이 탯줄이 아닐까?
어느 것 하나라도 끊긴다면 잃어버릴 균형, 나는 지금 균형을 잡기 위한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는 것은 아닐까?
가을이면 목이 졸린다.
천근만근 마음도 눌린다.
그래서 처절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왜?
가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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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