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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느 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밤이었어요.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서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매서운 바람만 씽씽 내달렸어요.
개울 북쪽에는 여관이 있었지요.
주인 부부가 막 잠을 자려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주인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거기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어요.
몹시 피곤한 얼굴빛이었어요.
"저는 가진 돈이 조금밖에 없는데
그래도 하룻밤만 눈보라를 피하게 해 주십시오."
주인이 등불을 치켜들고 여인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온몸에 부스럼이 난 문둥병 환자였어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값이 싼 집은 저 길 건너에 있으니 그 집으로 가 보시오.
그리고 당신 같은 문둥병 환자는 억만금을 준다 해도 재워줄 수 없소.
어서 가시오.
주인은 문을 걸어 잠그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여인은 하는 수 없이 길 건너 남쪽에 있는 여관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어요.
주인은 등불을 켜들고 대문을 열었지요.
"저는 방값이 넉넉지 못합니다.
눈보라만 피할 수 있게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재워 주십시오."
주인인 원씨 할아버지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라서 따듯한 안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저는 문둥병 환자입니다. 남의 집 방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걱정은 마시고 어서 들어오십시오.
돈보다 사람의 목숨이 더 귀한 것이니 먼저 사람을 살리고 보아야지요."
추위와 굶주림에 지치고 병들어 죽기 직전에 있는
여인을 본 원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인을 안방으로 들어오게 했어요.
그리고 솜이불로 몸을 감싸게 했어요.
여인이 방에 들어와 솜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으려니
얼어붙었던 온몸의 종기가 녹아서 깨끗한 이불이 피와 고름으로 얼룩졌어요.
여인은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조금도 민망스럽게 여기지 말아요.
이부자리야 다시 빨면 깨끗해지는 것이니까요.
병든 사람도 병이 나으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 가도록 해요."
여인이 할머니께 물을 좀 데워 달라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이미 알았다는 듯이 빌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욕물을 솥에 가득 데워 놓았으니 깨끗이 씻으시구려."
여인이 함지박에 물을 떠 놓고 목욕을 할 때
할머니가 부엌으로 나오며 물었다.
"내가 등을 밀어 드릴까요?"
여인은 혹시 병이 할머니께 옮을까 봐 거절을 했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말했어요.
"어떻게 혼자 등까지 씻을 수 있겠어요? 제가 등쪽만 밀어 드리지요."
할머니는 손을 걷어 올리고 여인의 등을 조심스럽게 밀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따뜻한 물을 부어가며 조심스럽게 씻기 시작하자
부엌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어요.
그리고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왔어요.
여인의 몸에 있던 종기는 사라지고
온몸이 매끈하고 뽀얀 살결로 변하면서 눈부신 빛을 내는 것이었어요.
할머니는 여인에게 새 옷을 갈아입게 하고
고름이 묻은 옷을 빨아서 불가에 널었어요.
그리고 여인이 덮었던 이불을 빨려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상하게도 흔적조차 없이 이미 깨끗해져 있었고,
오히려 향기마저 나는 듯했어요.
할머니는 이상한 일들을 할아버지께 이야기했어요.
"나도 부엌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밖으로 나오는 걸 보았소.
저것 보구려. 저 빛이 지붕을 뚫고 하늘까지 뻗쳐 있지 않소."
이 때 조용히 문이 열리며 여인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모습은 조금 전까지의 초라한 모습이 아닌
온화하고 너그러운 관음보살 같았어요.
여인은 원씨 부부에게 말했어요.
"어럽고 가엾은 처지에 놓인 저 같은 사람을 구해주신
고마움을 어찌 보답해야 할런지요.
몸의 병까지 씻은 듯이 낫도록 목욕을 시켜 주셔으니
더욱 큰 은혜를 느낍니다.
바라옵건대
이 곳에 부처님을 모시면 집안에 경사로움이 겹칠 것이옵니다.
날도 밝았으니 저는 떠나겠습니다.
부디 남은 생애 편안히 보내십시오."
말을 마치고 여인이 문밖으로 나서자
하늘에서 무지개을 타고 선녀들이 내려왔어요.
그리고 여인을 둘러싸더니 하늘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이른 아침 물을 길러 나온 아낙네와 들에 나갔던 농부들이
이 광경을 보고 모두 감탄했어요.
그런 뒤부터 이상하게도 개울 건너 북쪽에 있던
여관에는 점차 손님이 끊어지고
남쪽의 초라한 여관에는 점차 손님이 늘어나서
방이 모자랄 지경이었어요.
원씨 부부는 큰 부자가 되어 집과 논을 사서
가엾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노부부를 부모처럼 공경하였어요.
두 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부처님을 모신 집이 있던 고개를 '당고개'라고 불렀답니다.
당고개는 지금 청주시 세광중학교 동쪽에 있는 고개이며,
이 곳에는 원씨 부부의 고운 마음씨를 본받은 착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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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 날짜 | 2005-1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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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