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올해에도 형형색색의 연등이 도량을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인정과 풍속이 메말라
간다고 하지만 사월 초파일을 봉축하고
연등을 밝히는 불자들의 신심과 염원은 해마다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정성과 원력으로
밝힌 이 연등은 세상의 어두움을 없애고
마음의 번뇌와 갈등을 치유하는
지혜의 등불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맑은 햇살이 뜨락에 가득하고 그윽한
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옵니다. 또한 절 담장
아래의 불두화는 부처님 오신 뜻을 봉축하듯
눈부시게 피어 있습니다. 아마도 부처님이
탄생하셨던 그 날도 이렇게 꽃 향기
흩날리는 좋은 계절이었을 것입니다.
무우수, 근심을 없애는 나무
부처님의 탄생성지인 네팔 룸비니 동산을
참배해 보면, 금잔화, 코스모스, 접시꽃, 달리아,
부겐빌레아 등 황량한 인도의 벌판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꽃들이 룸비니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2500년 전의 그 때도 천지가
온통 꽃 향기였다는 경전의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야의 아버지 선각왕은 가비라성과
자신의 나라 국경 근처에 큰 동산을 만들었다.
선각 부인이 이름이 룸비니라 그를 위해
이 동산을 세운 까닭에 이것을 룸비니 동산이라
이름했으며, 그 동산에는 수목이 빽빽하게
서로 잇대어 세간에서 비길 데 없었다.
그 가운데는 온갖 꽃나무와 온갖 과실나무가
있어서 장엄했으며 다시 온갖 연못과 늪이
한량없었으며 끝없는 마니의 보내가
두루 동산에 가득했느니라.
『불본행집경』「수하탄생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는
온갖 꽃들이 부처님의 탄생을 축복하여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범천의 천신들마저 감동하여 꽃잎을 흩날려
축하해 주었습니다. 생일 선물로 꽃다발을
건네주듯 이 지상의 곷들이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해 주기위해 앞다투어 피어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꽃들이 아름답게 핀 동산을 거닐다가
한 그루의 나무 곁에 이르렀을 때 그윽한
꽃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 나뭇가지는 왕비에게 무릎이라도 꿇듯
실바람에 흔들리며 가지를 늘어뜨리는데
만삭의 산모는 그 가지를 잡아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나무가 바로 무우수(無憂樹)입니다.
이 나무는 경전에 따라 달리 쓰고 있는데,
'아소카', 혹은 '바라차' 또는 '프라크샤'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소카(asoka)는 산스크리트의 음역으로서,
이를 뜻으로 풀면 '무우(無憂)'가 되는 것입니다.
그 동산 가운데 특별히 한 나무가 있으니
이름을 바라차라 일렀다. 그 나무는 뿌리가 튼튼하고
위아래가 고르며 가지와 잎이 드리우고 얽혀서
반은 녹색이요 반은 청색이며, 비취색과 자색이
서로 빛나 공작의 목과 같았느니라.
그리고 또 매우 부드러워서 가린제 옷과 같으며
그 꽃이 향기롭고 묘하여 맡은 사람은 크게 기뻐했다.
『불본행집경』「수하탄생품」
이 아름다운 나무를 향해 오른손을 뻗어
무우수 가지를 잡았을 때 산기를 느끼고
부처님을 낳게 되는 것이지요.
이 때 아무런 진통이나 근심 없이 출산하였으므로
'무우수'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참 멋있는 나무 이름 아닙니까?
근심을 없애는 나무!
이러한 이름에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의미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부처님은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근심과 걱정을 없애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삶의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중생들은 근심과 번뇌 속에서
갈길 몰라 헤매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난 인연 때문이지는
몰라도 훗날 부처님은 청년시절에 이 무우수
꽃을 꺾어 야소다라 공주에게 청혼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롭게도 붗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나무와 무척
관련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게 나누자면,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나셨고,
태자 시절 염부수(閻浮(樹)그늘에서 생노병사의
고통에 대해 명상하셨고,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셨고,
망고나무 숲에서 천불화현(千佛化現)의
신통력을 보이셨고, (沙羅樹) 향기 속에서
열반을 맞이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들이 모두 나무 아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즉, 부처님은 나무 아래에서 한 생을 시작하여
나무 아래에서 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우수, 보리수, 사라수를
삼영수(三靈樹 )라고 부르면서 신령스럽고 존귀한
나무로 예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원력으로 오신 분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이렇게 좋은 날에
꽃 향기 따라 세상에 오셨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가장 좋은 계절에 당신이 오신
메시지를 가장 기쁘게 전하기 위해서 사월 초파일을
선택하였을 것입니다. 요즘의 일로 비유하자면
중생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당신 스스로 준비한 것이지요.
흔히 부처님을 여래(如來)라고 존칭하는데,
이 말 속에는 '원력으로 오신 분' 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래는 범어 '따타가따(Tathagata)'를
한역한 것으로, 원래의 뜻은 '그와 같이 온 사람'이
되지만 여기에 구제자적인 성격을 덧붙이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오신 분'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원력으로 오셨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이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올 때 스스로 선택해서 오신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태어날 부모를 미리 선택해서 세상에
나오신 분이 있습니까? 어느 날 태어나 보니까
부모와 형제가 인연되어져 있고
집안과 환경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올 때 자기의 뜻에 의해서 온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렇게 전생의 업연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을
'업생(業生)' 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업보의 상관관계로 인해 주위의
인연들과 만나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결과는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지만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서
주체자적인 역할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인연의 법칙과 질서에 의해
현재의 상황에 놓여지게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가 불만이고 시기 질투만
늘어납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탐진치 삼독에만 끄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온통 어둠이고
마음에는 어리석음만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른바
원생(願生)입니다. 당신 스스로가 목적을 가지고
부모의 몸을 의지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당신 스스로 삶을 선택하였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오고 안 오고는
'필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옵션' 사항이었다는
말입니다. 당신 혼자서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다시 사바세계로 내려왔다는 의미입니다.
중생들이 업력에 의해서 떠밀리듯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하강하여서
저 세간에 착한 법을 베풀리라.
중생들에게 바름으로써 보이되
큰 칼과 쇠사슬에 굳게 얽힌
생사의 뇌옥을 깨뜨려서
함이 없는 길을 열어 보이리라.
중생들에게 방편으로 보여서
생사의 뇌옥에서 나오게 하리니
스스로 괴로움을 건지고자 하는 사람
나와 함께 하강하도록 하라.
『볼본행경』「강태품」
부처님은 도솔천궁에서 이렇게 원력을 세우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뚜렷한 목적과 사명을
지니고 오신 것이지요. 부처님이 표현하신 것처럼
중생들이 '생사의 감옥'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어찌 그들을 외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감옥에서 자유롭게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오늘 사월 초파일에
우리 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중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차마 중생을 외면할 수 없어서 인간의 몸으로
나투어서 룸비니 동산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달성하였고 인생의 몫을 100퍼센트
실천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부처님에게 견주면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과연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주 오래된 영화 '빠삐용'을 보면 주인공은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합니다.
실패하고 또 갇히기를 거듭하면서 점점
늙어갑니다. 그 주인공은 염라대왕 앞에 갔어도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염라대왕은 이렇게 그 죄를
엄중히 물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인생을 허비한 죄라고.
그렇습니다. 한편으론 우리 삶도
거대한 감옥인지도 모릅니다. 그 생사의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날마다 명예와 재산을 쌓으면서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제자리걸음입니다.
욕심과 집착 때문에 생사의 감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