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새해 아침을 여는 을유년
올해는 을유년(乙酉年) '닭의 해'입니다.
닭은 어둡고 긴 밤을 인고(忍苦)하고, 마침내 새벽을
여는 희망의 전령사입니다.
시계가 없던 옛날에는 새벽 닭 울음소리를 듣고
아낙네는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고, 선비는 책을 읽었습니다.
'닭 울음소리'는 많은 의미를 상징하고 내포합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태양이 떠오름을 예고하는 희망,
어둡고 긴 밤을 견디어 내는 인욕(忍辱), 그리고
새벽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혜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닭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시각에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정진과 깨달음을 상징합니다.
닭 울음소리는 온갖 어둠의 잡귀들을 물리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을유년 새해에는
나라의 모든 재앙과 부정의(不正義)가 일순에 사라지기를
여러분과 함께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그리고 불자님들의 가정과 나라의 모든 일들에
날마다 날마다 좋은 일(日日是好日)이 생겨나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서산대사 휴정(休精)은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일으켜서
누란지경의 나라를 구한 호국대성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가귀감』『선교결』『운수단』등의
불교저서를 통해서 미몽에서 해매는
불교도와 교단의 길잡이가 된 큰 스님입니다.
당시 선과 교로 분열되어 있던 지리멸렬한 불교교단의
선교양종판사가 되어 사상적,실제적으로 통합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서산대사가 지리산에서 출가하여 용맹정진하다가
어느날 마을을 지나가다가 한낮에 우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 칠흑처럼 캄캄한 마음의 유혹을 깨부수고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가 스님의 시집인
『청허당집』에 기록되어 있다.
그때 깨달음의 경계를 시로 읊은 깨달음의 시
즉, 오도시(悟道詩,오도송)가 있습니다.
髮白非心白(발백비심백)
古人曾漏洩(고인증루설)
今聽一聲鷄(금청일성계)
丈夫能事畢(장부능사필)
忽得自家底(홀득자가저)
頭頭只此爾(두두지차이)
萬千金寶藏(만천금보장)
元是一空紙(원시일공지)
머리는 희었어도 마음은 희지 않았다고
옛 사람이 일찍이 말했네.
이제 닭 울음소리 한 곡조에
장부의 해야 할 일이 끝났네.
내 집의 도를 홀연히 얻으니
온 세상의 사물들이 그대로 진리의 세계로다.
천만의 대장경도
본래의 하나의 비어 있는 종이러니.
부처님께서는 새벽에 샛별을 보시고
'홀견명성득오도(忽見明星得悟道)'하셨습니다.
서산대사는 새벽에 울어야 할 닭이 난데없이 한낮에
우는 소리를 듣고 응어리였던 '무(無)'자 화두의
칠통을 깨부수고 은산철벽과 같은 조사의 관문을
경절(徑截)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서산대사에게 한낮에 우는 닭 울음소리는
무문관(無門關)을 쳐부수는 천지개벽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깨달음의 기연(機緣)은 삼라만상에
두루 어디에나 있습니다.
'발백비심백(髮白非心白)'은 인도의 4조 우파국다(優婆國多)
존자가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修)존자에게
"스님 머리가 이미 희신데 머리가 하얀 것입니까?
마음이 하얀 것입니까?" 하고 묻는 말에,
제 3조가 "나는 머리털만 흴 뿐이지 마음은 희지 않다."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이나 온 나라 모든 사람들이
을유년 새벽을 여는 금닭(金鷄) 울음 소리를 듣고
무지와 부정(不正)에서 깨어나고, 서산대사처럼
"온 세상의 사물들이 그대로 진리의 세계로다"를
깨닫는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중국 당나라 때 운문 문언(雲門文偃)선사의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란 화두가 함께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운문선사는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보름날 법회에서
대중들에게 말했습니다.
"보름(15일) 이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오늘부터 보름 이후(새해 첫날) 그대들이 희망하는
일에 대해서 한마디씩 말해 보시오." 하였는데
대중이 아무 대답을 못하자 스스로 말씀하시길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운문광록』에 나오는 이 화두는 너무나 멋진 법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일간지의 '오늘의 운수'를
보면서 하루의 일진을 점칩니다.
여러분,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이 따로 정해져 있겠습니까?
길이이라도 악을 행하면 반드시 흉하고,
흉일이라도 선을 행하면 반드시 길할 것입니다.
인간사 길흉이란 사람의 마음과 행위에 달린 것이지
날이 고정되어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슬픔과 분노는 지난날 잘못된 삶과 업(業) 때문입니다.
그것에 얽매여서 새로운 고통과 악업을 재생산해
내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난해의 묵은 업장,
고정관념, 이기적인 고집 등을 훌훌 털고
새롭고 신선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합시다.
집착하는 마음을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를 슬프게 하는 일도 기쁘게 하는 일도
내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원효대사는 그의 오도송(깨달음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만물이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에서 분별심이 소멸하면 무덤의 해골물과
맑은 샘물이 둘이 아니라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촉루불이(心滅則 不二)
초발심이 뜻을 이룬다
『화엄경』「법성게」에
"처음 먹은 마음이 깨달음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꽃이 피면 이미 꽃 속에 열매가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듯이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키면 이미 그 초발심(처음 먹은 마음)속에
깨달음(정각)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사 모든 일은 처음 시작이 없으면 중간도 없고,
성취되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께서 생로병사에 대한 고통을
해결하시기 위해 출가의 결심을 하셨고,
6년 고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성취하셔서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처음 결심한 출가의 굳은 의지와 결단이 없었다면
어찌 정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 시작하는 모습이나 마음이 비록
다른 사람에게는 미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결실을 기약하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마음입니다. 우리 속담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 단추를 잘 낄 수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다"는 말도 있듯이 처음 시작을 중시하는
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불자 여러분! 우리는 을유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올해에
내가 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정진해 봅시다.
역경을 극복하는 길
경제학자들의 전망에 따르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제 사정이 별로 좋아질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
내수 침체, 환율 하락 등 우리 경제가 온갖 악재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국가에도 항상 문제는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니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부릅니다.
사바세계는 이 세상은 본래 고통의 세상이므로
참고 살아야 한다는 뜻인 '인토(忍土)'라고 번역됩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의 바다 인생고해(人生苦海)를
무사히 건너서 저 언덕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자칫 방심하거나 무리하면 침몰하여 영영 고해의 바다에
표류하고 마는 것입니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인욕(忍辱)과 반야지혜가 필요한 해입니다.
『육바라밀』에 의하면 "인욕은 만복의 근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욕이야말로 가장 강한 힘이요,
훌륭한 수행입니다. 인욕은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법구경』에는 다음과 같이 인욕에 대하여 설하고 있습니다.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고 그 마음을 거두고
화내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니 도를 행함에는 인욕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네."
지혜로는 사람은 역경을 기회로 만듭니다.
수행하는 데 마군(魔群)이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을 꾀할 때도 일이 쉽게 되면
겸손한 마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공부하는 데도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므로 성현의 말씀이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유마경』에서는 불성을 덮고 있는 번뇌가
깨달음의 씨앗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고원에서는 연꽃이 자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연꽃은
저지대의 진흙 한가운데서 청정하게 꽃을 피우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번뇌의 진흙탕 속에서 사는 중생이야말로
불성을 깨달아 부처가 되려는 결의가 강합니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귀한 진주를 손에
넣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뇌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깨달음이라는 보주(寶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까닭으로 모든 번뇌는 부처가 되기 위한 씨앗이요,
거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뇌란 배제하거나
단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번뇌 없이는 부처도 될 수 없습니다."
항원(抗原)의 침입이 있어야 몸에 항체(抗體)가 형성되어서
면역성이 생기듯이 번뇌가 있어야 보리(깨달음)가 싹을 틔웁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지혜의 칼로서 번뇌를 끊어내면
해탈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번뇌를 깨달음의 씨앗으로 봅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려우므로 더욱 정신을 차려서 현실을
직시하고, 나와 삶과 나라의 경제가 어떤 까닭에
의해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진단해 보는 기회를
가지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길러야 합니다.
바쁠수록 천천히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울수록
나보다도 더 어려운 이웃을 챙겨주는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연기적인 공동체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보다 더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여유를 갖고 삽시다.
서로 이해하고 화합해서 마음이나마 상처받지 말고
편안하고 마음이 부자가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부질없는 말과 행동으로 이웃에게 상처 주는 일은
삼갑니다. 괜히 실체없는 근심거리를 만들어 스스로
괴로워하지 맙시다. 궂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듯이
열심히 정진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자포자기와 절망이 가장 큰 고통이요 슬픔입니다.
생활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반칙으로 살려고 하지말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며, 현실을 정견(正見)하고
배가정진하면서 살아갑시다.
행복과 불행은 외부적 환경보다는, 내 마음에 의해서
결정됨을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문제와 고통의 해결을
밖에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아봅시다.
|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