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력의 삶과 업력의 삶
모자람으로, 갈증으로 허덕이는 중생의 삶을
업력(業力)의 삶이라 할 수 있다.
평화롭고 안락한 원력의 삶을 살려면
우선 미련 없이 자신의 것을 버려야 한다.
요즈음은 불자님들도 다 아시다시피 좀더 많은 것,
좀더 편리한것, 좀더 새로운 것을 가지라고 세상이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물질만이 아니라 좀더 능력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좀처럼 알 수 없ㄴ느 인터넷 용어를 익혀야 하고,
요즈음 같은 불경기에도 누구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고 떠들어 대고,
컴퓨터도 배워야 하고,
외국어도 몇 개 국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렇게 세상이 하자는 대로 다 따라가고,
채우고 또 채우면 과연 안락하고 행복하며
만족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이 가져야 만족할까요?
홍수가 나면 제일 먼저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그리고 짠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것처럼 인간의 욕심은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허기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와 같이 모자람으로, 갈증으로 허덕이는 중생의
삶을 업력(業力)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업력으로 끊임없이 탐욕하는 마음을 가진 것도 중생이지만,
그것을 조정하며 정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역시 중생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생사에 따르지 않는 항상 뚜렷한 한 물건,
물에도 젖지 않고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는 하나,
그 힘으로 살아간다면 보살의 원력(願力)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이 도량에 모인 것도 보다 나은
정신으로 제대로 한번 살아보려고 마음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력의 삶을 살아간,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수행자들을 살펴 배우고 성찰하며,
현재 나의 삶과 주변 모든 이들의 삶이 평화롭고 안락한
원력의 삶이 되게 하고자 여기 이렇게 함께 모인 것입니다.
원력의 삶을 살려면 우선 미련 없이 자신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언젠가는 몸뚱이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애착도
미련도 없어지게 되지요.
유행가에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살이라고 했습니다.
현재의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없어도 좋은 것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타진해 봐야겠습니다.
버리고 또 버린 후 맨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내 인생의 내용이고 알맹이[한물건]가 될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버리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로 아는 사람은
법도 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는가?“
이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 밖에 법 아닌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이지요.
부처님 법도 버려야 한다고 하면
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부처님 말씀, 진리, 법이라 할지라도
부여잡고 있으면서 집착하면 병이 되고
병이 있으면 고통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제자리를 버리고
가을에게 넘겨주는 것은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변화하는 계절 환경 속에 사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도 변화를 주고 자신에 대한
투철한 수행의 각오를 통해서
투명하게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위법망구의 수행
수행의 성취를 위하여 몸을 기꺼이 버린
설산동자의 위법망구의 정신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계속 버림의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살아야(수행해야)원력의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은 진정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임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몇몇 수행하신 분들의 예를 보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부처님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 어떤 인물에 대해서 전기를 쓰거나,
그의 생애를 이야기 할 때는 보통 탄생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물론 조상이나 부모의 이야기부터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 사람이 태어나기 전의 일은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위인이나 성인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는
그의 전 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요.
이 세상의 생애만으로는 그렇게 훌륭한 일들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이미 많은 생애를
통하여 준비해 왔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전생의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습니다만,
오늘 특별히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설산동자의 위법망구(爲法忘軀)이야기입니다.
‘설산동자 반게살신(雪山童子 半偈殺身)’ 이라고도 하는
이 이야기는 『열반경』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내가 설산에서 수행할 때 제석천이 나를 시험하기
위하여 나찰로 변신하여 과거 부처님이 설하신 반게송인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을 말하였다.
나는 이 게송을 듣고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니 나찰뿐인지라 ‘착하다 대사여, 반게송을 들려주면
종신토록 그대의 제자가 되리라‘하였다.
나찰이 말하기를 ‘나는 극도의 굶주림으로 말할 수 없다.’
하니, ‘그 반게송을 들려준다면 내 몸을 너에게 주리라’하였다.
나찰이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 寂滅爲樂)’이라는
후반게송을 일러주자,
나는 즉시 석벽과 나무와 길에 써놓고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떨어져 나찰에게 몸을 던졌다.
이 때 나찰은 다시 제석천으로 변하여 나의 몸을 받았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이 이야기는 수행의 성취를 위하여
몸을 기꺼이 버린 설산동자의
위법망구의 정신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상불경 보살의 수행
상불경 보살의 이야기는 최상의
무아행(無我行)으로 증상만(增上慢)을 제도하여,
힘은 바로 스스로 가장 겸손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임을 일깨우신 교훈이다.
상불경(常不輕) 보살은 문자 그대로 항상 공경히 예하고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으로 이름난 보살로서 역시
석가모니불의 전신입니다.
증상만(增上慢) 비구가 큰 세력을 가지고 판을 치던
시대에 한 비구 보살이 있었으니 상불경이라 하였답니다.
이 보살은 재가자나 출가자를 가리지 않고
만날 때마다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공경하고 감히 가벼이 여기지 않나니
당신들은 마땅히 보살도를 수행하여 반드시 성불하리라.“
그 때마다 어떤 이는 욕을 하고 꾸짖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상불경 보살은 자신을 해치려고 하면 멀리 도망하여
피하면서까지 이와 같은 수행을 변함없이 계속 했다고 합니다.
『법화경』 제 20품에서 볼 수 있는 이 상불경 보살의
이야기는 최상의 무아행(無我行)으로 증상만(增上慢),
즉 교만이 극에 달하여 더 이상 교만할 수 없는 이들을 제도하여,
힘은 바로 스스로 가장 겸손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임을 일깨우신 교훈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내세울까요?
조금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건강하다는 것으로,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어떤 것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알게 모르게
나라는 끝없는 교만심을 얼마만큼의 무게로
짊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공경진성 굴복아마니의 수행
한경헤 불자는 우리에게 원력수행이
어떤 삶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 시대의 위법망구와
수행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언젠가 TV를 통해 이 이야기를 접하고 저 개인적으로
많이 부끄럽고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책으로 발간되어 정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불자님들도 이미 읽어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주변 여러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기도 하고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각각의
그리고 공동의 인연과 그 업력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즉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따라서 그 업은 가벼워지기도
하고 아예 없어지기도 하며 전혀 다른 성업(聖業)으로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매우 절절하고 생생하게 체험으로 보여준
예가 동양화가 한경혜 불자의 『오체투지』입니다.
이 불자는 하루에 일천배의 절을 합니다.
절을 통해서 쉼없이 진실한 불성을 지극히 공경하고
무량한 세월 동안 쌓아온 교만심과
탐욕심을 굴복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업력의 삶에서
원력의 삶으로 변화시켜 냅니다.
한경혜 불자는 우리에게 원력수행이 어떤 삶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종교의 가르침은 이 세상 온갖
모순과 갈등으로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의 강을
건너게 하는 방편이요, 수단일 뿐입니다.
마치 강을 건너는 데 뗏목이 필요하지만
이미 강을 건넌 후에는 뗏목이 필요 없어지듯
고통의 강을 건너 고통과 근심이 사라졌다면
‘가르침’ 이라는 방편의 뗏목도 기꺼이 버려야 될 것입니다.
종교적인 가르침이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말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상황이나 사정이 바뀌면
그 가르침은 쓸모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물건들을 아까워하면서
애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이런 애착이 짐이 되어
맑은 나의 참 생명의 기운을 가로막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발심 수행
- 발심, 원력, 수행, 회향의 삶
바른 마음을 내어 큰 원을 세웠을 때
자연히 수행하게 된다.
모든 나의 발심, 원력, 수행의 공덕을
자신과 그리고 모두에게 원만히 회향되어졌을 때
세상은 좀더 좋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불보살님의 수행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며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애지중지하며 보호하고 애착하는
이 몸뚱이를 버리면서 참된 생명을 살게 한,
그래서 전생과 금생은 물론 내생까지도
계속될 생사에 매이지 않는 뚜렷한
생명 하나가 사는 법을 보았습니다.
이제 나 자신은 어떻게 발심하고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를
구체적으로 정리 점검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 여기를 떠나서 별도의
수행이나 삶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원효 스님은 발심 수행장에서
초발심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방삼세 부처님이 적멸궁 장엄하심
오랜 세월 욕심 버려 고행하신 까닭이요,
이 세상의 중생들이 화택문을 윤회함은
옛날부터 욕심 쫓아 쾌락 즐긴 탓이어라.
나는 적멸궁과 화택문 사이 어느 쪽에 더 가까이
근접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 당장 어떤 마음을 내었는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할 것입니다.
처음 발심한 공덕은 바로 성불에 이른다고
『화엄경』에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대로
발심하는 일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바른 발심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행위의
마음을 내기 마련입니다.
증오하는 마음도,
죽이고자 하는 마음도 마음이긴 합니다.
바른 수행에는 바른 발심이 우선입니다.
발심에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무상(無常)한 줄을 바로 안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면 제대로 발심하는 것입니다.
특히 가을은 산천초목 모두가
제행무상의 진리를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상한 줄을 알아 제대로 발심하였다면
그 다음은 원력입니다.
가을의 결실을 기약한 농부는 봄에 좋은 씨앗을 뿌립니다.
원력은 씨앗을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그 원력(願力)이
크면 클수록 실천이 착실하게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오늘의 주제인 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바른 마음을 내어 큰 원을 세웠을 때 자연히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행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바로 회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나의 행위들, 즉 발심, 원력, 수행의 공덕을
자신과 그리고 모두에게 원만히 회향되어졌을 때
세상은 좀더 좋게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이 가을, 좀더 많이 변화하십시오.
|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