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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웃음과 노래를 팔던 기녀 암라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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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만난 사람들>
웃음과 노래를 팔던 기녀 암라빠리
제 어머니는 본래 비사리성 왕의 시녀였습니다.
범지의 신분에 바사리성의 대신이기도 했던 제 아버지는
왕 못지 않은 부와 권력을 누리는 분이었습니다.
왕과 신하라는 벽을 넘나들며 돈독한 친분을 과시하던 부 둔은
종종 미인들이 가득한 왕의 비밀스런 정원에서
남모를 연회를 즐기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처음 만난 그 날도
그 수은 여인의 향기와 술로 젖어 들었습니다.
하늘거리는 얇은 옷을 입고
곧 품에 안길듯이 춤을 추는 수많은 기녀들 사이에서
아버진 유독 어머니에게 마음을 빼앗겼나 봅니다.
빼어난 미모에 암라열매처럼 향기롭고 윤택한 피부를 지닌
제 어머니에게 반한 아버지는 어수선한 틈을 타
어머니의 손을 끌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밀스런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연회를 빌미로 왕의 궁전을 찾아드는 일이 잦아지는 만큼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도 깊어 갔습니다.
위험한 사랑이 그러하듯 그 달콤함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염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저를 잉태한 어머니를 두고 궁중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감히 왕의 여인을 건드리다니 그가 누구이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만인의 지탄과 왕의 분노를 감수하고
당신이 아이의 아버지임을 자백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당신의 지극한 사랑을 고백하고 되려 왕에게
여인을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허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왕과 신하가 한 여인을 공유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지만 왕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을
왕이 허락할 리 없었습니다.
참혹한 눈물로 애원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왕의 발에 입을 맞추며 간청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여인을 저에게 하사하지 못하신다면
아이만이라도 제가 키우게 허락해주십시오.“
왕과 신하의 관계를 떠나 둘도 없는 벗이었던 왕은
그것마저 거절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렇게 저는 핏덩어리로 궁전을 나와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진 저의 모습에서 암라열매처럼 향기롭고 보드랍던
어머니를 그리며 암라빠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아버지에겐 수많은 부인과 시녀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남다른 애정으로 보살펴주긴 하셨지만
수많은 이복형제들 틈에서 전 늘 따스한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어머니를 닮아서였을까요?
복숭아꽃 피부에 촉촉한 눈빛을 지닌 전
노래와 춤에 남다른 재주를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 날이면
꼭 저를 불러 춤과 노래를 선보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이들의 탄성에 흐뭇한 웃음을 짓곤 하셨습니다.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따라 기뻐하던 전,
어느 날부턴가 남자들이 넋 나간 시선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엔 바사리성뿐 아니라
인근 나라의 왕과 대신들도 종종 방문하였습니다.
황금으로 치장한 코끼리를 타고 비단휘장을 휘날리며 권세를 자랑하던 그들도,
가냘픈 선율을 다라 아침이슬처럼 흩어지는
저의 춤사위 앞에선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에 불과했습니다.
곧 저의 소문은 먼 나라까지 퍼졌고,
이웃나라의 왕과 대신들이 국사를 핑계로
아버지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잦곤 하였습니다.
제 나이 열다섯이 되던 해였습니다.
국가 간의 전쟁을 방지하는 협약을 맺기 위해
일곱 나라의 왕이 비사리성에서 회동하였을 때 일입니다.
천하의 주인을 자처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교섭은 몇 날 며칠을 이어갔고,
긴 논쟁과 협상을 현명한 이들의 회유와 웅변으로
원만히 해결되었습니다.
이를 축하하는 연회를 아버지가 주선하게 되었습니다.
피를 말리던 긴장을 한순간에 내려놓은 각국의 왕과 대신들은
옷깃을 풀어헤치고 맘껏 술과 음식을 즐겼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달빛이 서늘한 바람이 불러올 무렵,
늘 그랬듯 아버지는 저를 부르셨습니다.
달빛을 타고 흐르는 시냇물인 양 흐트러지는 저의 춤사위에
연회장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일곱 나라의 왕들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눈빛을 반짝였습니다.
당신만을 바라본다는 눈빛으로 긴 팔과 다리를 놀려
사내들의 마음을 뺏었고, 당장 달려들 듯 한 그들의 눈빛을
매정하게 등지는 일이 저에겐 너무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춤과 노래가 끝났을 때 일곱 왕들은 술잔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일곱 왕은 나를 자기에게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화기애애한 연회자리엔 일순간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아버지는 허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물린 아버지는 조용히 저를 불렀습니다.
“암라빠리야. 너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구나.
서로 최고임을 자부하는 일곱 왕이 모두 너에게 청혼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아버지는 제가 누구를 선택하면 좋겠습니까?”
“그게 참 곤란한 일이다.
너를 한 왕에게 보내면 다른 왕들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한 죄로 어머니는 평생 감옥과 같은 왕궁에서 저를 그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어미 없는 자식으로 자라며 숱한 나날을
슬픔과 원망으로 채웠습니다.
가진 부와 명예를 다 던지로 나에게로 올 것 같던 사내들도
연회가 끝나면 다시 황금 지팡이와 코끼리를 살핀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잔의 취기가 더해 진 욕정을 흔히 사랑이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차라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진 부와 권력으로,
아침이면 이슬처럼 흩어질 맹세로
아픔과 고통만 주는 사내들의 욕정을 발아래에 두고
희롱하리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전 아버지에게 또렷한 음성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말씀과 같습니다.
만일 저를 한 왕에게 보낸다면 다른 왕들이 가만히 있을 않을 것입니다.
그건 그들이 저를 지극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분노는 아버지에게만 그치지 않고 곧 국가 간의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고통과 눈물 속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아버님에게 애써 이끌어낸 연맹이 보잘 것 없는
저 하나로 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차라리 저를 모두의 여인이 되게 하고
또 누구의 여인도 아니게 하십시오.“
아버지는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습니다.
희끗한 귀밑머리에 잔주름이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이 저에겐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뜻대로 해라.”
아버지는 비사리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인
암라원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새와 꽃이 가득한 연못 가에 화려한 누각을 짓고,
아름다운 미녀들을 모아 춤과 노래로 웃음을 파는
저의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초대를 받은 이웃나라 여섯 왕은
모두 나를 자기의 여인인 양품에 안고
흥청망청 술잔이 오가는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름 아침이면 어김없이 황금지팡이를 챙겨 들고
코끼리에 올라 떠났습니다.
헌데 한 사람만은 떠나지 않고 제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그가 바로 마가다국의 젊은 왕 빔비사라입니다.
짧은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향긋한 과일향이 배인 저녁바람을 맞으며 우린 시를 짓고 노래했습니다.
빼어난 외모를 가진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웅대한 포부를 듣고 있노라면,
영우의 여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궁전의 숱한 여인 중 하나로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전 그를 따라 암라원을 나설 수 없었고,
치열한 경쟁과 대립 속에 한시도 궁전을 비워둘 수 있는 빔비사라는
더 이상 저와 함께 암라원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비바람이 몹시도 잠자리를 설치게 하던 다음날,
빔비사라 역시 왕의 깃발을 펄럭이며 코끼리를 타고
그렇게 암라원을 떠났습니다.
빔비사라는 제게 끼고 있던
황금반지를 빼어주며 말했습니다.
“계집아이를 낳으면 당신을 맡아 잘 키우고,
사내아이를 낳으면 이것을 신표로 삼아 나에게 보내시오.“
얼마 후 전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빼어난 기상에 총명한 기바까는
의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아이가 여덟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성근 나무그늘 아래서 고개를 무릎에 묻고 있는
기바까를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들과 다투었니, 왜 그러니?”
고개를 든 기바까의 얼굴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도 없는 자식이라고 아이들이 놀렸어요.
어머니, 저의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가슴 한 구석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때가 되었다 싶어 품속에 고이 간직했던
왕의 반지를 꺼내주며 말해주었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다.
이것을 가지고 그분을 찾아가거라.“
그렇게 아들마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제 곁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남다른 애정을 보인 아버지가 있었고,
한때 봄볕 같은 사랑을 한 빔비사라가 있었고,
지금은 친자매같은 수만과 파담이 있긴 하지만
그리 큰 위안이 되진 못했습니다.
그런 추억과 애정 역시 빗방울에 몽글거리다 사라지는
작은 물거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백명의 기녀를 부리며 매일 밤 수많은 귀족들 틈에서
웃음과 노래로 나날을 보냈지만
외로움과 허전함은 채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모든 번민과 고통의 바다를 몸소 건너신 분,
모든 번뇌의 적을 무찌른 영웅 중의 영웅,
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신 분,
소문으로만 듣던 부처님께서 비사리성에 오신 겁니다.
“아, 그분이라면 나의 이 마음을 아실거야.
그분이라면 나의 이 고통을 치료하실 수 있을거야.“
성인을 보러 가는 길에 화려한 치장과 의복은 마땅치 않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목욕하고 소박한 흰옷을 꺼내 입고는
마차를 준비시켜 곧장 붓다가 계신다는 곳을 향해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먼지가 날리는 대로는 벗어난 큰 나무 아래
고요히 선정에 들어 계신 부처님이 보였습니다.
아, 황금빛 피부에 우뚝한 바위처럼 흔들림없는 그 모습은
뭇 별 가운데 빛나는 달과 같았습니다.
그 모습만 보고도 저는 솟아오르는 환희심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곧 수레를 멈추고는 신발과 장신구마저 벗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천천히 부처님께 다가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저 여인
수행자의 마음마저 붙들 수 있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바른 생각과
지혜로써 그 마음 진정시켜라.
차라리 사나운 호랑이 입이나
미치광이의 칼날 아래 설지언정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애욕의 정을 일으키지 말라.
걷거나 서고 앉거나 누우며
아름다운자태를 뽐내는 여인들
사람의 착한 마음 겁탈하나니
어떻게 스스로 방어하지 않으리.
빗지 않은 머리에 허수한 몸단장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데
하물며 그 몸짓과 태도 꾸미고
아름답게 치장한 고운 얼굴이랴?
갖가지 치장으로 더러움을 숨기고는
어리석은 사내를 유혹하고 속이며
정신을 빼앗고 나쁜 생각 내게 하여
추하고 더러운 꼴도 깨닫지 못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덧없고 괴로우며
더럽고 내 것은 없다고 관찰하여
그 참된 모양을 자세히 봄으로써
탐욕의 생각을 없애야 하느니라.
스스로 경계를 바르게 관찰하면
하늘여인이라도 좋아할 것 없거늘
하물며 어떻게 인간세계 탐욕이
능히 사람 마음을 붙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정진의 활과
지혜의 칼날과 예리한 화살 쥐고
바른 생각의 겹 갑옷 입고
다섯 가지 탐욕과 결전해 보라.
차라리 뜨거운 쇠창으로
두 눈을 찔러 뚫을지언정
애욕을 품은 마음으로
여색을 보지 말라.
애욕은 그 마음 미혹시켜
여색에 현혹되게 하나니
어지러운 생각으로 목숨마치면
반드시 세 가지 나쁜 길에 떨어지리라.
감관이 경계를 얽어매는 것도 아니요
경계를 감관이 얽어매는 것도 아니니
그 가운데서 생겨나는 탐욕의 생각이
감관의 경계를 얽어매기 때문이니라.
마치 두 마리 밭가는 소가
한 멍에 한 굴레에 매인 것 같아
소가 서로를 얽어맨 것 아니니
감관과 경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을 제어해
함부로 방일하지 말지니라.
수많은 왕과 귀족들도 어린아이처럼 다루며
모든 남자들을 발아래 두고 비웃곤 하곤 저였습니다.
하지만 더운 여름날 서늘한 연못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비구들 앞에 서자 몸과 마음을 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너무도 성스러운 그 모습에
전 감히 부처님을 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 분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
꿈에 그리던 어머니들과 이복형제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온 어린 시절과 사랑하는 아들 기바끼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자신이 처지,
거짓 웃음과 교태로 사내의 주머니를 털며 살아가는
서글픈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전 부처님께 한마디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울었습니다.
부처님께선 이런 제 속마음을 아셨는지
가만히 기다려주셨습니다.
울음을 그치고, 귓가로 스치는 서늘한 바람을 느낄 무렵
부처님께선 따스한 음성으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편안히 앉으십시오.
그대는 참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롭고 노수한 남자가 법을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
기특하달 것 없지만, 젊은 나이에 풍족한 재물과
아름다운 미모를 겸한 당신같은 사람이
바른 법을 믿고 좋아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몸매와 재물을 보배로 여기지만
그건 진정한 보배가 아닙니다.
향기롭고 보드랍던 피부도 세월이 가면
낙타의 가죽처럼 흉해지고,
천리를 걷던 굳건한 다리도 어느날 돌아보면
문득 지팡이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영원을 맹세하던 사랑도 봄볕 아지랑이처럼 흩어지고,
천겹의 성처럼 보호해줄 것 같던 재물도
한줌의 모래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갑니다.
아름다움도 건강도 사랑도 재산도
세월의 힘 앞에 비참히 무너지지만 바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한 공덕은 세월의 힘이 감히 침범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내 곁을 떠나고,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매일 만나야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뜻대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마음처럼
내 곁에 머물지도 떠나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바른 법 만큼은 나의 뜻대로 나의 곁에
영원히 머물며 큰 기쁨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무엇인가에 의지한다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와 그 무엇은 나의 뜻대로
머물지도 떠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른 법만큼은 나의 뜻대로
나의 곁에 영원히 머물며 큰 기쁨이 됩니다.
더구나 여자는 남자보다 의지하는 것이 많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의지해야 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남편에게 의지해야 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의 뜻대로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보호해주지는 않습니다.
나의 뜻대로 따르기는 커녕 도리어
내가 그들의 뜻을 따라야만 합니다.
이처럼 여자의 몸엔 남자보다 더 큰 제약과 구속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가진 미모와 재력 역시
고통을 초래하는 덫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마치 늘 곁에서 저를 지켜보기라도 한듯 말씀하셨습니다.
황금과 비단을 아끼지 않게 하던 저의 몸이
갑자기 너무도 초라하고 더럽게까지 느껴졌습니다.
저는 부끄러움 가득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청하였습니다.
“거룩하신 성인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부처님께서 쉴 만한 암라원 동산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머물며 내일 미천한 저의 공양을 받아주신다면
한없는 기쁨으로 여기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제게 공양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 내일 우리 집으로
몸소 오신다니 이 보다 더 더한 기쁨은 없었습니다.
전 곧 하직인사를 드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떤 음식이 좋을까, 어떤 상을 준비해야 할까,
집안 청소부터 깨끗이 해야할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한시가 급했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한 무리의 귀족들이 급히 말을 타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수레를 세우고
잠시 길을 비켰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쏜살같이 스쳐가는 두 무리 사이엔 결국
충돌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수레가 뒤집히고 깃발과 일산이 부러졌으며
땅에 뒹글어진 몇몇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 설사 왕의 행차라 해도
길을 비켜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차족 귀족들은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너는 도대체 무슨 세력을 믿고 길을 비키지않느냐?”
“고귀하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제가 내일 부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그 준비를 위해 빨리 가야겠단 생각에
길을 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을 공양에 초대했다는 소리를 듣고 리차귀족들은 깜짝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 역시 부처님이 비사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뵈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황금빛이 번쩍이는 옷자락을 휘저으며
거만한 모습으로 나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초대는 다음으로 미루고 먼저 우리에게 양보하라.
그러면 우리가 너에게 한 재산 나눠주지.“
생각할 것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초대하였고 부처님께서도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양보할 수 없습니다.“
리차 귀족들은 저같은 천한 기생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그럼 황금 천냥을 주겠다.
그 공양을 우리에게 양보해라.“
“제 초대는 이미 결정됐습니다.”
“그럼 천냥의 열여섯 배를 주겠다.
그 공양을 우리에게 양보해라.“
“설사 기하신 분들의 재산 전부를 주신다 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도 이미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뵙고 싶다면 제 동산으로 가셔야 할 겁니다.
제가 암라원에 머무실 것을 청했고
부처님께서도 허락하셨으니 지금쯤은 그곳에 계실 겁니다.“
그들과 더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전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시 마차를 달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화려한 치장을 걷고 잡다한 물건들을 치우고는
곳곳에 향기로운 물을 뿌려 쓸고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온 바사리성을 뒤져 최고로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들을 모아
음식을 장만했습니다.
그렇게 분주한 밤을 보내고 이튿날 날이 밝았습니다.
사람을 보내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고 소박하고
정갈한 옷을 입은 온 집안 사람들이
부처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세존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기러기떼처럼
걸어오시어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몸소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께 음식을 바치고
공양이 끝나길 걸어오시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청하였습니다.
“이 비야리성의 동산 중 암라원이 가장 훌륭합니다.
저는 이 동산을 여래와 승단에 바치겠습니다.
저를 가엾게 여겨 받아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저를 가엾게 여겨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탑을 세우고 절을 짓고
동산의 과일로 시원함을 보시하며
다리와 배로써 사람을 건네주고
광야에서 물과 풀을 보시하라.
또 집을 지어 보시하면
그 복은 밤낮으로 불어나고
계를 갖추어 맑고 또 깨끗한 자
그는 죽어 반드시 좋은 곳에 나리라.
저는 낮은 평상을 가져와 부처님 앞에 앉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차근차근 설법해 주셨습니다.
먼저 보시와 계율을 지키면 그 공덕으로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고,
애욕은 큰 재앙이요 더럽고 깨끗하지 못한 큰 번뇌이므로
이를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부감 없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저의 모습을 본 부처님은
이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말씀하시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벗어남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명쾌하고 온화한 부처님의 말씀은
깨끗한 흰천에 붉은 색을 칠하듯
제 마음에 또렷이 스며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곧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실상을 바로 보는 법안이 생겼습니다.
진정 의지해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 저는 다시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마음에서 모든 두려움과 슬픔이 안개 걷히듯 사라졌습니다
저는 기쁨에 차 부처님 전에 합장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들에게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제가 바른 법 가운데서
우바이가 되도록 허락해 주소서.
저는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생물을 죽이지 않고,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저는 부처님으로부터 다섯 가지 계를 받는 그 순간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교태로운 몸짓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던 암라빠리는 그 순간 사라졌습니다.
술과 기름진 음식을 즐기며 부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던
암라빠리는 그 순간 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다섯가지 계율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어지럽던 저의 감관은
나날이 깊은 호수처럼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얼굴을 보고 욕정을 느끼던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따스한 벗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잡았던 저의 외로움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지금 제 곁엔 어느 사내보다 듬직하고,
어느 사내보다 굳건히 맹세를 지키며,
어느 사내보다 큰 기쁨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네 가지 성스러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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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 날짜 | 2007-08-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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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