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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의 전각 및 건물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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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량사의 전각 및 건물


⑴ 유리보전(琉璃寶殿) :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7호


△ 청량사 유리보전

유리보전은 조선 후기 건물로
연화봉과 반야ㆍ문수봉 아래
가파른 경사면에 자리잡은 건물이다.
워낙 경사가 급해 단단한 석축을 쌓아
너른 대지를 조성한 후 전각을 세웠다.
이 유리보전은 청량사의 중심 전각으로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7호로 지정(1974.12월)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전각은
유래가 흔치 않은 명칭을 지녔다.
이 건물은 다포계인 것 같으나
주심포계와 절충한 조선 후기 건물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큰 보 밑에 간주를 세워 후불벽(後佛壁)을 구성해
다른 건물에서 보기 힘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으로
즉, 약사여래는 동방의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주재하는 분으로
중생의 치병을 서원으로 삼은 분이다.
중생이 육체적으로 고통받을 때,
혹은 정신적으로 번뇌에 허덕일 때
약사여래는 자비로운 손길로 중생의 인기를 받아 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찰에 약사전이 들어서 있는 것은
이러한 약사여래의 신통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에는 단아한 모습의 약사여래좌상을 봉안하였다.
한편 유리보전의 현판(260×60cm)은
고려 후기의 공민왕(恭愍王)이 직접 쓴 친필이라고 전한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지방에 피난 온 적이 있었으므로 친필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석조고니불상도 이채로왔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유리보전은 1705년(숙종31)에 중수한 이후 1974년 내외부를 중수했으며
1989년과 2000년에 보수했다.
유리보전 앞에는 세 갈래로 자란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이 이 자리를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부르니,
곧 세 개의 뿔을 가진 소무덤인 셈이다.

또한 유리보전에는 '10왕전(十王殿)'이 있었는데
만월암으로 옮겼다가 다시 유리보전으로 옮겨 놓았다.



⑵ 응진전(應眞殿)


△ 청량사 응진전

유리보전과는 다소 떨어져
금탑봉 아래에 조성되어 있는 응진전은
지난날 나한전이라 불려왔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주심포(柱心包) 건물이다.
창호는 정자살창으로 짜여져 어칸에만 2분합의 문을 달았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구조이다.
안에는 석가삼존상(조선 시대, 75m)과 나한상을 모시고 있으며
뒤쪽 절벽 위에 동풍석(動風石)이 있으며
좌측 바위는 부처님의 발모양을 닮은 불족암이 있다.



⑶ 선불장(選佛場)


△ 청량사 선불장

유리보전 옆에 있는 건물로
현재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 92년에 지은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3칸에 툇마루를 달았다.
선불장이란 '부처를 뽑는다'(選佛)라는 뜻으로
일종의 선방으로 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든 선객들이
낱낱이 무위(無爲)를 배우는 곳이다.
즉 계율을 수계하는 도량 또는 교법을 수학하는 도량을 말한다.
선불장 옆에 종무소가 붙어 있다.


⑷ 심검당(尋儉堂)



△ 청량사 심검당과 심우실

심검당은 선불장 옆에 있으며
2002년에 개축된 건물로 강원(講院)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3칸은 강원(講院)이고 좌우 양 협실을 두었다.
방문은 세살문이고 가운데 3칸에 툇마루를 달았다.
심검당은 선실(禪室) 혹은 강원(講院)으로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검당의 검은 마지막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단절하여
부처님의 혜명(慧明)을 증득(證得)하게 하는
취모리검(吹毛利劍)을 상징하고 있다.
사찰 내에 적묵당(寂ㆍ堂)이 심검당과 함께 위치할 경우에는
적묵당은 선원으로, 심검당은 강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수행처이므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⑸ 심우실(尋牛室)


△ 청량사 심우실

심우실은 심검당 옆에 있는 건물로 2002년 개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심검당과 사이에 대청마루를 붙여 한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방문은 세살문이고 통유리창 너머에 분합문을 달았다.
'심우'는 자기의 본질,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을
10개의 그림과 시(詩)를 통해 나타낸 심우도(尋牛圖)의 첫번째 그림이다.
"처음에 사람이 들에서 소를 찾는 모습으로,
처음 발심한 수행자가 사람 본래부터 갖춰진 원성(圓成)인
심우를 잃어버린 뒤 그것을 찾는 것"이 곧 심우이다.
소는 불가에서 "인간 본래의 자리" 를 의미하며
소만큼 불가와 친숙한 동물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선사들이 소를 수행의 채찍으로 삼았으랴.
고려 시대 보조 국사 지눌도 자신의 호를 목우자(牧牛子),
"소를 기르는 사람" 즉 참다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 했으며
만해 한용운 선생도 만년에 자신의 서울집을 '심우장(尋牛莊)'이라 했으니
소는 인간의 진면목인 불성(佛性)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곳",
"불성을 찾기에 전념하는 곳"
이곳이 바로 청량사의 심우실일 것이다.


⑹ 범종루(梵鍾樓)


△ 청량사 범종류와 사물

범종루는 98년 10월에 준공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2층 건물이다.
2층의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 구조이며
1층에는 기념품 판매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범종루(梵鍾樓)는 불전 사물인 1천5백 관의 범종(梵鍾),
목어(木魚), 그리고 5자 길이의 법고(法鼓), 운판(雲版) 등을
비치한 사찰의 당우 중의 하나로 이곳에 배치된 사물은
모두 부처님께 예불(禮佛)을 드릴 때 사용하는 불구(佛具)로
새벽 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 예불을 볼 때 주로 사용된다.
사물을 치는 순서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 순으로 두드리는데
이 소리들로 불음을 전파한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으로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한다.
또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구제하며,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인 날짐승을 향하여 제도하는데 쓰이고,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보내어 구제한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⑺ 산신각(山神閣)


△ 청량사 산신각

청량사의 산신각은 지난 2003년에 개축되었는데
정면과 측면 각 1칸으로 맞배기와지붕을 올린 건물이다.
창호는 띠살창으로 짜여진 창살문으로 여닫이문을 달았으며,
안에는 칠성 탱화와 산신 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산신 신앙은 불전(佛殿) 안에서는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우리나라 특유의 산악 숭배 신앙과 관련이 깊다.
산신은 요마(妖魔)를 물리치는 가람 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산속 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外護神)으로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본연의 것이 아니라서
전(殿)이라는 명칭을 붙이지 못하고
각(閣)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칠성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인
북두칠성을 신격화해 봉안한 것이다.
칠성은 수명신의 구실과 함께 가람수호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청량사의 산신각은 심검당 뒤편에 위치해 있으며
그곳에서 바라보는 남쪽 정경도 사뭇 정겨움을 자아내게 한다.



⑻ 안심당(安心堂,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청량사 안심당(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안심당(安心堂)은 지난 98년에 지은 건물로
사찰 내의 다원(茶園)으로 대중 포교의 장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나무현판이 붙어 있는 이 찻집은
안팎 곳곳에서 은은한 전통의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개방된 절집의 포근한 쉼터이다.
정면 2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굴뚝이 아름답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집,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산란을 멈추고
평온을 가져다 주는 집" 이 바로 안심당이다.
이곳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중생 구제의 한 실천으로
포교 사업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

| 글쓴 날짜 | 2005-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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