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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를 중창한 고봉 법장 선사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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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량사를 중창한 고봉 법장 선사

청량사를 중창한 법장(法藏, 1350~1428) 선사는 려말선초의 고승으로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의 제16세 사주(社主)였다. 법장선사의 성은 김씨로 본관은 신주(愼州)이고 호는 고봉(高峰) 또는 지숭(志崇)이며 어머니는 임씨(林氏)였다. 선사는 20세에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젊어서 승과(僧科)에 급제하였으나, 명리(名利)를 위하는 길이라 하여 버리고 입산수도하던 중 나옹(懶翁)을 스승으로 삼고 법맥을 이었다. 항상 머리털을 두 치 가량 기르고 바리 하나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며 풀피리를 잘 불어 사람들은 그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였다. 30년 동안 명산대찰을 찾아 소요하다가 봉화의 청량산에 청량암(淸凉庵)을 짓고 선정을 닦았다. 1395년(태조4)에 남쪽의 여러 산을 유력(遊歷)하던 중 금전산(金錢山) 금둔사(金芚寺)에서 유숙하다가 꿈속에서 한 사찰을 보았다. 다음 날 우연히 송광사(松廣寺)에 이르렀는데 꿈에 본 사찰과 같았다. 제자들과 함께 송광사를 새로 일으켜 옛 모습대로 완전히 복원할 것을 서원하여 1399년(정종1) 국가의 힘을 빌어서 불(佛)□법(法)□승(僧) 전당 30채를 지었다.
그 뒤 다시 김해 신어산(神魚山) 각암(覺庵)과
경주 원원사(遠願寺),울산 태원암(太元庵) 등에 머물다가
1414년(태종 14)에 송광사로 돌아왔다.
1420년(세종2)에는 송광사 주지가 된 제자 중인(中印)이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다시 사찰의 증축을 시작하였다.
이때 그는 방문(榜文)을 지어서 낙성회(落成會)를 베풀고
중인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1428년 7월 11일에 병을 얻었으나
평소의 의식을 그대로 행하다가
21일 인시(寅時)에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유언에 따라 유골을 거두어 침실에 안치하였는데,
이듬해에 유골에서 사리(舍利)가 나왔다.
그 뒤로 여러 차례를 두고 사리가 분신(分身)한 것을 합해서
78개를 얻어 백동함(白銅函)에 넣어
송광사 북쪽 언덕, 현재의 청진암(淸眞庵)터에 부도(浮屠)를 세웠다.
송광사를 중창한 공로와 그 도덕으로
송광사 16국사의 열(列)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자로는 신찬(信贊)ㆍ혜성(惠性)ㆍ상제(尙濟)ㆍ홍인(洪仁)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고봉법장가집(高峰法藏歌集)》1권이 있다.
송광사 국사전에 모셔진 고봉 법장 선사의 진영은
16국사탱 가운데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고려 시대의 15국사와는 달리
조선 시대의 국사로 머리가 긴 것이 특징이다.
| 글쓴 날짜 | 2005-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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