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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의 연혁
이    름 : 청량사 (crs@cheongryangsa.org) 조회수 : 3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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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량사의 연혁

청량사(淸凉寺)는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247번지 청량산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청량산이란 그 이름부터가 중국 화엄영산(華嚴靈山)에서 따왔으니
《화엄경》에서는 문수보살의 정토는 동방의 청량산이라 했다.
이런 절경인 청량산에 수많은 사암이 들어섰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청량산은 일찍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으로
신라 때 원효와 의상 대사가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수행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청량사는 원효 대사가 663년(문무왕 3)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져 온다.
그리고 이곳과 조금 떨어진 금탑봉 아래의
응진전(나한전)은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 유리보전(1976년경)

원효 대사가 세운 절을 내청량암,
의상 대사가 세운 곳을 외청량암 이라고 하는데,
흔히 청량사라고 하면 내ㆍ외청량암을 가리킨다.
청량산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줄을 잇듯 늘어선 곳이다.
지난날 청량산에는 33곳에 이르는 대소 암자가
골짜기마다 들어서 있어 불경 읽는 소리가
온 산에 가득해 그칠 날이 없었다.
이렇듯 당시 청량산은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많은 암자를 주재하던 절이 바로 연대사(蓮臺寺)였으니
지금의 유리보전도 당시의 전각이다.


△ 청량사로 오르는 침목 계단

그러므로 지금의 유리보전과 응진전은
연대사의 전각 중 하나로써 당시에는 별개의 가람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청량사는 창건 이후 고려 시대에 법장 고봉(1350~1428) 선사가 중창하였고,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이 곳 청량사에는 고려 시대 보조 국사 지눌, 조선시대 서산 대사,
사명 대사등 수많은 인물들이 찾은 수행처로도 유명했었다.


△ 모정에 세워진 '청량산 청량사' 표석

1594년 경상감사 홍리상(洪履祥)과 함께
청량산을 찾은 신지제(申之悌)의 기록에는
이 때 이미 각 암자에는 승려가 살지 않아
법당과 당(堂)이 무너지고 황폐화되어 있었다고 적고 있다.
또 류진(柳殄, 1582~1635)이 1604년 청량산을 방문했을 때
"연대사 에는 3ㆍ4명의 스님이 있었으며
지장전에는 단 한 명의 스님이 있었다." 고 한다.


△ 청량사 안내도

조선말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암자의 수가 10여 개로 줄어들어 있다.
이 후 청량사는 급격히 쇠퇴해져 오다가
1984년 지현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옛 명성을 조금씩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이 청량사는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열두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는 연꽃의 수술자리이다.
바위 봉우리 아래 자리 잡은 청량사는 새의 둥지처럼 아늑하다.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이 여럿 남아 있는데
공민왕이 친필로 썼다고 전해오는 '유리보전(琉璃寶殿)' 현판과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 그것이다.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며
지불은 종이를 녹여 만든 부처님이니 바로 약사여래불이다.
지금은 금칠을 해 놓았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반야봉과 문수봉이 있고
그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보살봉이지만 주세붕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자소봉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응진전은 외청량암으로 청량사에서 가장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입석에서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오르면 만난다.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래로는 아득한 낭떠러지이다.
바위가 마치 3층으로 이뤄진 금탑 모양을 하고 있고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을이면 절벽 아래로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장관이다.
화려한 산세 에 비해 암자는 조촐하고 소박하다.

지금의 주지 지현 스님이 청량사에 온 이래
청량사는 큰 발전을 이룩하여 선불장, 심검당, 심우실,
범종루, 산신각, 3층 석탑, 5층 석탑, 안심당, 수각 등의
대불사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청량사의 지난모습


1) 창건
청량사는 663년(문무왕 3)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한다.
이 시기 청량산에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즐비해 산 전체가 하나의 불국토였다.

2) 중창

청량사의 중창은 려말선초의 고봉 법장 선사(1350~1428)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이 때의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3) 현재

지난 84년 지현 스님이 주지 스님으로 부임한 이 후
2차에 걸친 불사로 청량사의 사세가 커지고 있다.
90년부터 92년까지 이루어진 1차 복원불사로
법당을 해체 복원하고 심우실, 선불장을 신축했으며 5층 석탑도 세웠다.
또한 2차 복원불사로 범종루와 안심당, 수각을 건립했으며
99년부터 3차 불사가 시작되어
문수전, 일주문, 요사채 건립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처럼 사세가 미약했던 청량사가 오늘의 사세를 갖추게 된 것은
주지인 지현 스님의 남다른 불사원력의 힘이었다.

| 글쓴 날짜 | 2005-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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