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지 않는 사리뿟따
아침 햇살에도 대지는 벌써 뜨거운 열기를 내뿜습니다.
걸식을 위해 기원정사를 나선 벗들은 한 끼의 온정을 베풀 선량한
시주를 찾아 갈래 길에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제 뒤를 따르는 이는 언제냐 싶게 훌쩍 커버린 라훌라뿐입니다.
지금도 라훌라가 출가하던 때의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부처님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1,000명의 벗들과 함께
고향 까삘라왓투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숫도다나의 왕궁에서 공양을 마치고 썰물처럼 성을 빠져나가던
행렬을 한 어린 소년이 막아섰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그늘은 행복합니다.”라훌라였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물려줄 재산을 주십시오.”
그 말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의 눈동자는 티 없이 맑기만 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야소다라가 시켰던 일일 것입니다.
소년은 가사 자락을 붙들고 뒤를 따랐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물려줄 재산을 주십시오.”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온 대중의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돌아보지도, 걸음을 멈추지도 않는 아버지를 따라 조르고 또 조르며
니그로다 숲까지 따라왔습니다.
숲으로 들어선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저를 찾았습니다.
“사리뿟따, 이 아이가 아비의 유산을 원합니다.
라훌라를 사미로 받아주십시오.”
“예, 부처님.”
부처님은 늘 보살피고 지도해 줄 것을 당부하며 하나뿐인
당신의 아들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니그로다 숲의 훌륭한 수행자들이 모두 우물가로 모였습니다.
목갈라나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혀 주었으며, 안냐따 꼰단냐를
비롯한 아라한들이 머리에 물을 뿌려주며 법왕의 계위를 이은
라훌라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얗게 깎은 머리로 유산으로 물려받은 붉은 가사와 진흙 발우 하나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던 라훌라의 환한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라훌라도 이젠 제법 청년 태가 나기 시작합니다.
정사를 어지럽게 뛰어다니고, 잘못인줄도 모르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조롱하던 라훌라였습니다.
그랬던 철부지가 이젠 제법 진중하게 걷고,
의미와 표현을 갖춰 적절하게 말하며,
산란한 생각들을 삼가는 것을 보면 많이 의젓해졌단 생각이 듭니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흐뭇한 마음으로 큰 길을 벗어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어, 저기 고따마의 수제자가 오시는구먼.”
거드름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였습니다.
“어이, 잘난 사리뿟따. 이리 와 나 좀 봅시다.”
걸음을 멈추지도, 세 걸음 앞을 응시한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이들과의 대화에서 유익함을 이끌어내기란 지난한 일입니다.
비난과 조롱이 뒤섞인 웅성거림이 쏟아졌습니다.
음색으로 보아 족히 대여섯 명은 되리라 짐작되었습니다.
“사문 나부랭이가 감히 바라문의 명령을 거역한단 말인가.”
한 바라문이 달려와 거칠게 뺨을 후려갈겼습니다.
저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걸음의 속도를 더하지도 늦추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옷자락에 침을 뱉은 그는 영웅이라도 된 듯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또래들을 향해 어깨를 폈습니다.
그 때, 라훌라가 하지 않았으면 좋을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스승께서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십니까?”
“이놈은 또 뭐야, 옳거니 새끼 비렁뱅이지.
너에게 알맞은 음식을 주마.”
바라문은 모래 한줌 짚어 라훌라의 발우에 던졌습니다.
“이 무슨 무례한 행동입니까?”
떨리는 라훌라의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뭐, 무례한 행동.
위아래도 몰라보는 비천한 놈들이 감히 예의를 논한단 말이냐.”
바라문은 모래가 흘러내리는 라훌라의 발우를 빼앗아 머리를 내려쳤습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골목을 울리던 웅성거림이 멈췄습니다.
저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습니다.
라훌라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순식간에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도 예상치 못했던 일인 듯 바라문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무리와 함께 서둘러 골목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았습니다.
가사 자락을 잘라 지혈하자 피는 이내 멈췄습니다.
“가자, 라훌라.”
라훌라는 고개를 들지도 걸음을 옮기지도 않았습니다.
검붉은 핏덩이가 엉긴 라훌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제법 어른스런 태가 난다지만 경험이 일천한 나이였습니다.
라훌라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텅 빈 골목에서 찌는 열기를 고스란히 견디며 한참을 마주서 있었습니다.
라훌라의 움켜쥔 두 주먹이 풀어질 때쯤 한 걸음 다가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라훌라야, 부처님의 제자라면 분노와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건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야 한다.
참는 것이 가장 유쾌한 일이라고 세존께서 늘 말씀하지 않으셨느냐.
부처님의 제자라면 세존께서 내려주신 지침을 받들며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다 잡고 인욕으로 보배를 삼자.“
핏물이 엉겨 붙은 누꺼풀을 눈물로 씻으며 라훌라가 말했습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냐?”
“제가 조금만 용감했다면 스승님을 모욕한 저런 놈을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가만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저는 길게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낮춰 라훌라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저들처럼 방자한 마음으로 거친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냐?”울먹이며 말이 없었습니다.
“라훌라, 분노와 원망을 품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자신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것과 같단다. 라훌라, 교만한 자들은
지혜와 힘을 뽐내며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짓밟는 행동을 자행하고는
스스로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요감한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란다.
그런 행동은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라훌라, 거센 바람을 안고 횃불을 들면 어떻게 되겠느냐?”
“얼굴을 데이고 말 것입니다.”
여전히 울음이 뒤섞인 목소리였습니다.
“그렇다, 라훌라. 바람을 안고 횃불을 드는 사람처럼
방자한 마음으로 악행을 저지르면 살아서 온갖 화를 당하게 되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단다.
그 죄는 수미산보다 무거워 목숨을 마치더라도 그 죄는
16분의 1도 줄어들지 않는단다.
그런 결과를 계산하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라훌라, 부처님의 제자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굴복시켜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곧바로 없애야 한다.
하늘의 신과 제왕이 용감하다지만 가장 위대한 힘은 인욕이란다.”
다행이 라훌라는 울분을 잠재웠습니다.
다소곳이 손을 모으는 라훌라를 데리고 발길을
돌려 기원정사로 향했습니다.
연못가에서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씻기고 옷에 배인 핏물도 씻어냈습니다.
그리고 한결 밝아진 라훌라의 손을 잡고는 넓은 나무 그늘로 찾아들어
시원한 물도 한 그릇씩 마셨습니다.
“스승님, 오늘 공양 시간은 너무 짧은데요.”
둘이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라훌라의 눈빛이 다시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스승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뭐가 말이냐?”
“치미는 분노를 이리 쉽게 참아내니 말입니다.”
“라훌라, 분노가 치밀었다면 참았겠지만 난 분노가 치민 적이 없단다.”
“느닷없이 뺨을 때렸는데도 화가 나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법을 일러줄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숨결을 길게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빠르지 않은 속도로 발음을 정확히 하여 물었습니다.
“라훌라야, 이 몸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느냐?”
“이 몸은 흙, 물, 불, 바람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라훌라. 그럼, 무엇이 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 흙의 성분인가?”
“몸에 내포되어 있는 단단한 성질의 것들,
즉 머리카락, 털, 손톱, 발톱, 이빨, 피부, 살, 근육, 뼈, 심장,
콩팥, 간, 허파, 지라, 위장, 소장, 대장 등을 흙의 성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라훌라. 그럼, 무엇이 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불의 성분인가?”
“몸에 내포되어 있는 따뜻한 성질의 것들입니다.
즉 음식을 소화시키고, 체온을 유지하며, 뜨거운 번민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들을 불의 성분이라 합니다.”
“그렇다, 라훌라. 그럼, 무엇이 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바람의 성분인가?”
“몸에 내포되어 있는 움직이는 성질의 것들입니다.
즉 위로 향하는 움직임, 아래로 향하는 움직임, 장기의 움직임,
움츠리고 펴는 움직임, 쓰라린 통증, 비정상적인 움직임,
관절의 움직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등을 바람의 성분이라 합니다.”
“그렇다, 라훌라. 그럼, 그 네 가지 성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라훌라. 네 눈으로 직접 보거라.
단단하기 그지없이 보이는 저 대지도 폭우가 쏟아지면
한순간에 무너지고, 영원히 흐를 것 같은 강물도 작열하는
태양 아래 혹독한 가뭄이 겹치면 말라버리며,
온 광야를 태우던 사나운 물길도 작은 도랑 하나를 넘지 못해 꺼지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고 집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던 폭풍도
거짓말처럼 멈춰 가벼운 터럭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하물며 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성분과 네 가지
성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들이겠는가.
그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들이며, 나날이 파괴되는 것들이며,
언젠가 완전히 사라지는 무상한 것들이다.
라훌라, 이렇게 덧없는 것을‘나’라 하고 ‘나의 것’이라 하며
집착한다면 그를 현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덧없는 것을 움켜쥐고 집착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그렇다, 라훌라. 현명한 사람은 덧없는 것을 ‘나’또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스승님, 이 몸이 덧없는 것임을 알아‘나’또는
‘나의 것’이라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모욕을 당하거나
몽둥이로 맞아도 아픔을 느끼지 않습니까?”
“모욕을 당하면 불쾌함을 느끼고, 몽둥이로 맞으면 아픔을 느낀단다.
이 몸이 있는 한 그런 느낌마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란다.”
“그럼, 이 몸이 덧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구나, 라훌라. 둘 사이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단다.
그런 불쾌함과 고통을 느끼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 불쾌함과
고통을‘나의 체험’으로 여기고 집착하지.
그래서 그 불쾌함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곧바로‘분노’를 일으킨단다.
그리고 그 분노는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남길 폭력을 초래하고 만단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불쾌함과 고통을 느끼면 곧 이렇게 관찰한단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불쾌함과 고통은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곧 인연 따라 흩어지기 마련이다.
불쾌함과 고통의 원인이 된 이 몸 역시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덧없는 것이다.
따라서 불쾌함과 고통, 그 원인이 된 몸은 덧없는 것이므로 나 또는
나의 체험이라고 고집할만한 것이 아니다.’
불쾌함과 고통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한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관찰을
인연하여 머물고 그치며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한마음이 된단다.”
“그럼, 유쾌함과 쾌감을 느끼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까?”
“그렇다, 라훌라. 누군가 공손히 다가와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찬양하며 맛있는 음식을 주고 부드러운 천의 옷을 입혀준다면
누구나 유쾌함과 쾌감을 느끼겠지.
이 경우에도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단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유쾌함과 쾌감을‘나의 체험’으로 여기고는
그 느낌을 유지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곧 탐욕을 일으킨단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그 탐욕은 끝내 채워지지 않고
자신의 타인에게 후회와 비탄의 눈물을 초래하고 만단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유쾌함과 쾌감을 느끼면 곧 이렇게 관찰한단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유쾌함과 쾌감은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곧 인연 따라 흩어지기 마련이다.
유쾌함과 쾌감의 원인이 된 이 몸 역시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덧없는 것이다.
따라서 유쾌함과 쾌감, 그 원인이 된 이 몸은 덧없는 것이므로
나 또는 나의 체험이라고 고집할만한 것이 아니다.’
유쾌함과 쾌감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한 지혜로운 사람은
그 관찰을 인연하여 머물고 그치며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한마음이 된단다.”
라훌라는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늘 평온하고 선량한 마음에 머무시는데
제자인 저는 부끄럽게도 그렇질 못합니다.
바른 몸가짐, 바른 마음가짐에 머물지 못하고 분노에
몸과 마음을 맡긴 저를 용서하십시오.”
힘이나 권력이 아닌 진실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알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렇다, 라훌라. 부처님의 제자가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할 때는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마치 갓 시집온 신부가 시부모나 신랑을 대하며 부끄러워하듯
스스로도 남에게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라훌라야, 다음에 누군가 너에게 욕을 하거나 주먹질하거나
돌팔매질을 하거나 칼부림을 한다면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라훌라는 옷깃을 가다듬고 합장하였습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으로 키워진 이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고, 때가 되면 뿔뿔이 흩어지고 부서질 존재이며,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질 존재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저는 모욕당하고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당하더라도 바른 몸가짐과 바른 마음가짐으로 안정된
한마음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겠습니다.”
“훌륭하구나, 라훌라.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앞으로도 수없는
모욕과 폭력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그럴 때 힘써 세존의 가르침을 상기하고 실천하라.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도적이 찾아와 예리한 톱으로 너의 몸을 마디마디 자를 때.
만일 마음이 흔들리거나 추악한 말을 내뱉거나 포악한 행동을
한다면 곧 진리의 길에서 퇴보하는 것이다.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지혜로운 제자라면 몸을 갈가리 자르는
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라.
그를 사랑하듯 동서남북 사방의 중생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사유와 상하의 온 중생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라.
온 중생을 사랑하는 넓고 큰마음으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고,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한량없는 선행을 닦으며 온 세상을 유행하라.’
라훌라,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다.
비구가 되고도 부처님께서 몸소 실천하고 가르쳐주신 평온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 것이며
덕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늘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갓 시집온 신부처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단다.”
“예, 스승님.”
라훌라가 이렇게 컸다니, 늘 곁에 두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허물을 자각하고, 거짓 없이 참회하고, 올바른 길을 향해
스스로를 다잡는 모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정사로 들어가자.”
정사로 들어서자 성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는지
수많은 벗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와 위로하였습니다.
“사리뿟따, 괜찮으십니까?”
“라훌라야, 많이 다치진 않았니?”
“세존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라훌라를 데리고 벗들과 함께 부처님이 머무는 방으로 찾아갔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부처님께서
조용히 라훌라에게 물으셨습니다.
“상처가 아프진 않느냐?”
“아깐 쓰라렸지만 지금은 아프지 않습니다.”
“원망스럽진 않느냐?”
잠시 고개를 떨어뜨렸던 라훌라가 이내 합장하고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누구도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너의 머리를 내려친 그 사람이 밉지 않은가?”
“도리어 그가 불쌍합니다.”
“왜 그가 불쌍한가?”
“저의 아픔은 잠깐이지만 그의 오랜 괴로움은 어찌하겠습니까?
분노의 힘에 휩쓸려 악행을 저지른 그는 오랜 세월
고통스런 과보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이 윤회할 그를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거리에서 다시 그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분노와 폭력이 초래할 무서운 과보를 일러주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그의 어리석음과 미혹함을 일깨우겠습니다.”
“너의 말을 그가 귓전으로 흘린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침묵하겠습니다.”
“비웃으며 다시 폭력을 휘두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흙, 물, 불, 바람 네 가지 요소가 화합한 이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가 되면 산산이 흩어지며,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질 존재입니다.
거기에는‘나’도‘나의 것’도 없습니다.
집착할만한 것도, 보호할만한 것도, 안타까워할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저는 모욕과 고통 속에서도 바른 몸가짐과
바른 마음가짐으로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를 굴복시키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나의 가르침이 무기력하고 무의미하다고는 생각지 않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섞은 시체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로 베어도 전혀 아픔을 모릅니다.
그건 칼이 날카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체가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돼지는 천상의 감로를 주어도 먹지 않고 버립니다.
그건 감로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돼지가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 지독한 악인이라면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세존의 가르침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푸른 연꽃처럼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사리뿟따, 시자를 훌륭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차라리 잘 드는 칼로 배를 가르고 살을 베며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지언정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차라리 수미산을 등에 지고 바다에 뛰어들어 고기밥이 될지언정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나의 법은 세속의 법과 다르다.
세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을 진리에서는 천하게 여긴다.
탐욕과 분노에 맛들인 자들은 나의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인욕을 실천하라.
가장 용감한 사람은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인욕의 현명함은 해와 달보다 밝으니라.
용과 코끼리가 힘이 세다지만 인욕의 힘에는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시방에 널리 보시하는 것 큰 복이라지만
그복도 인욕만은 못하니
참으며 자비 베풀면 온 세상에 근심 없고
마음속 든든하며 끝내 해로움 없네.
인욕은 편안한 집, 재앙과 요괴 깃들지 않고
인욕은 신들의 갑옷, 어떤 무기도 침범하지 못하며
인욕은 커다란 배, 험난한 바다 건널 수 있고
인욕은 훌륭한 약, 모든 생명 살릴 수 있네.
| 
이 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