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아는 사리뿟따-
벌레 소리도 잦아들고 달이 서쪽으로 기울고서야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세존의 법문이 끝났습니다.
온화한 벗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각기 잠자리로 찾아 들었습니다.
저도 세존께서 머무시는 작은 전각 곁의
커다란 방사로 찾아들었습니다.
이제 세존의 법문을 되뇌며 육체에 쌓인
피로를 풀어야 할 시간입니다.
남북으로 폭이 넓은 그 방에는 이미 많은
동료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고 머리를
서쪽으로 두고서 누워있었습니다.
물론 저를 위한 판판하고 마른자리가 한 칸 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누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쯤 앗사지께서는 앙가(Anga,鴦伽)의 짬빠(Campa,)에 계실 겁니다.
그 자리에 누우면 앗사지가 계신 곳을 향해 발을 뻗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동료들과 반대 방향으로 누워 그들에게
저의 발 냄새를 맡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조용히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새어든 빗물로 축축하고 새벽이면 찬 이슬이 들이칠 곳이지만
겉옷을 네 번 접어 그곳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옷깃을 가다듬고는 앗사지께서 계실 동쪽을 향해
공손히 세 번 절하고 예배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머리를 동쪽으로 다리를 서쪽으로 뻗고서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붙여 사자처럼 누워서는
가볍게 눈을 감고 길게 호흡을 골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못마땅함이 선연히 묻어나는 목소리들이 방 안을 울렸습니다.
“좋은 자리 놓아두고 참 별스럽구먼.”
“같은 계율을 지니고 같은 가르침을 배우는 세존의 제자라면
그 행동도 같아야지 밤마다 저런 유별난 짓이라니….”
동료들이 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라자가하에 거주하는 1,250명의 비구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보름마다 모여 계(界,patimokkha)를 암송하는 일을
세존께서 목갈라나(Mogallana,目犍連)와 저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계는 곧 교단의 근간이고, 계목을 암송한다는
것은 곧 세존을 대신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중요한 임무를 당신의 가르침에 귀의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희에게 맡기셨으니 먼저
귀의한 선배 비구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저희 또한 갓 출가한 이들로써 그런 중대한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며 거절했지만 세존께선 단호하셨습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께서 계를 설하고, 대중을 이끄십시오.”
저는 두 번 거절하지 않습니다.
명을 따르겠다는 표시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의 두발에 예배하였습니다.
천 명의 대중이 웅성거렸습니다.
그 어수선함 속엔 제 분수도 모르는 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습니다.
제가 진정 세존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다면
이런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거룩하신 앗사지존자의 인도로
당신의 제자가 된 후 보름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의 외삼촌 꼿티따(Kotthita,)께서
긴 손톱을 흔들며 깃자꾸따(Gijjhakuta,)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산돼지가 판 동굴에서 세존을 모시고
부채질하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졌던 외삼촌을 저도 20년 만에 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외삼촌은 매우 총명하신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남쪽 곳곳을 떠돌며 수많은 현자들을 논파해
그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는 소문을
풍문으로 들어왔던 터였습니다.
그런 외삼촌이 라자가하의 군중을 이끌고 찾아왔다는 것은
당신의 날카로운 논변의 다음 희생자로
부처님을 지목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외삼촌은 산돼지가 판 동굴 입구에서
저를 한참이나 노려보셨습니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못난 놈, 훌륭한 가문에 제법 명성까지 갖췄던 놈이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일개사문
나부랭이 곁에서 부채질이나 하고 있다니….”
외삼촌은 인상을 찌푸리며 인사도 없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눈매로 역시나
부처님을 노려보며 한마디 던졌습니다.
“젊은이, 나는 어떤 법도 인정하지 않고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네.”
불청객의 언짢은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처님의 대답이 메아리처럼 동굴을 울렸습니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말은 인정하십니까?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은 눈치재지 못했지만 단 한 번의
문답으로 승부는 정해졌습니다.
잔뜩 찌푸렸던 미간이 활짝 펴질만큼
외삼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외삼촌은 크게 떠진 눈을 내리깔며 애써 당황스러움과
긴장을 감추고 초라한 변론을 이었습니다.
“무엇도 인정하지 않고 무엇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마저 나는 인정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는다네.”
“스스로 인정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시다면
무슨 까닭에 일부러 저를 찾아와 묻지도 않은 말을 저에게 던지는 것입니까?”
“고따마여, 꼿티따가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벗이여.”
현자들의 만남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은 법입니다.
두 현자의 멋진 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전 행운아입니다
외삼촌은 다행스럽게도 허공을 휘젓던 깃 손톱을 거두고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군중의 수많은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세존의 발 아래 무름을 꿇고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런 용기 있는 외삼촌에게
진주처럼 영롱한 진리의 말씀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인정하건 또는 무엇을 부정하건
그런 견해를 나의 견해, 나의 주장이라 여긴다면 평안은 찾아들지 않습니다.
그런 견해와 주장에 얽매여 목소리를 높이고
논쟁을 일삼는 자들을 교만한 자라 합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라곤 논리의 칼날을 겨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뿐입니다.
견해와 주장에 사로잡힌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당신의 견해와 주장의 근거가 되는
당신의 육체·감정·관념은 모두 무상하고, 생겼다 사라지는 법입니다.
거기에는 ‘나’도 ‘나의 것’이라 할만한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애써야 할 일은 그런 견해와 주장의
밑바탕에 자리 잡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토해내고,
돌아보지도 않을 때 당신은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곁에서 부채질하던 저는 세존의 그 말씀을 듣고
곧 온갖 번뇌가 사라진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세존께서 외삼촌에게 준 귀한 선물을 엉겁결에 제가 받은 것입니다.
열반의 그 평온함과 맑고 투명함에 넘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하던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고, 그 기쁨마저 감추었습니다.
번민과 고뇌의 강을 완전히 건넌 저에게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가 있다면 이 참된 가르침을 수호하는 일 뿐입니다.
저는 그 순간 다짐하였습니다.
‘모든 고뇌를 건너는 참된 진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호하는 용맹한 장수가 되리라.’
부처님은 진정 참되고 평온한 진리의
세계를 직접 체득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크나큰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라 해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벗들의 시기어린 눈빛을 알면서도 비구들을 이끌고 지도하라는
부처님의 명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이 서원 때문입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야. 외도의 습성도
버리지 못한 저런 자에게 왜 세존께서는….”
차갑게 내려앉는 새벽 공기에도 벗들의 투덜거림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탁발을 나서기도 전,
이른 시각에 세존께서는 온 대중을 모우고 저를 앞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리뿟다, 대중이 그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그대는 잠들기 전에 허공 어딘가를 향해 절을 하고
꼭 그쪽으로 머리를 두고 잔다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여섯 방위를 숭배하고 예배하는
외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럼, 매일 밤 누구에게 예배하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진정 세존께서는 진리의 주인이고,
승리자이며, 모든 인간과 신들의 찬양을 받아 마땅한 분입니다.
하지만 세존이시여, 저에겐 세존 못지않게 은혜로운 분이 계십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분에게 저는 매일 밤 예배하며,
그분이 계신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며,
아침이면 제일 먼저 그분에게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존자 앗사지입시니다.”
대중이 또 웅성거렸습니다.
“앗사지가 그대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허망하고 무상한 삶을 목격하고 불사(不死)의 길,
참된 진리의 길을 찾아 오랜 세월 떠돌았습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열변을 토하는
학자와 사상가들을 수없이 만나보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불사의 길을 일러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논쟁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부에 따라 울고 웃는 그들에게선
견고한 신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죽음의 강 앞에서 그들은 얇은 가면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가리거나 망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짙어가는 회의와 절망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거리에서 탁발하는 한 사문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모습을 보는 순간,
주변의 부산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간이 멈춰버리는 듯했습니다.
손에 든 발우를 응시하며 한 발 한 발 옮기는
그분의 걸음걸이는 평화롭고 고즈넉했으며,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그분의 얼굴엔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두려움과 초조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그분을 보며 전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는 예기는 들었지만
나는 한 번도 아라한을 본 적이 없다.
만약 아라한이 있다면 바로 저런 분이 아닐까.’
홀린 듯 그분의 뒤를 따르던 전 한적한 곳에서
식사할 자리를 찾는 그분께 손에든 걸상을 펴드렸습니다.
그리고 식사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가지고 온 병의 물을 따라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예의를 갖춰 정중히 물었습니다.
‘사문이여, 당신은 참 침착하고 얼굴이 발게 빛나는군요.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고,
무엇을 배웠습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벗이여, 사까족 출신의 위대한 사문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에게 출가하여, 그분을 스승으로 삼고,
그분을 존경하며, 그분을 따라 배우는 앗사지입니다.’
‘당신의 스승, 위대한 사문께선 어떤 법을 가르치십니까?’
‘벗이여, 저는 이제 막 출가한 사람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에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스승의 넓고 깊은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당신에게 제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앗사지께선 가만히 시선을 낮추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세치 혀를 칼과 방패삼는 사람들이 라자가하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말을 위한 말, 상처만 남기는 헛된 논쟁을 수도 없이 겪었던 전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옷깃을 여미고 앗사지의 발 아래 이마를 조아렸습니다.
‘저는 우빠띳사입니다.
많은 말씀은 바라지 않습니다. 저를 가엾이 여겨 요점만 이라도 일러주십시오.’
깊은 우물처럼 빛나는 눈동자로 한참을 바라보던 앗사지는
성스러운 입을 열고 저에게 못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그리고 또 소멸까지도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시네.
저는 그 자리에서 열반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괴롭히던 번민의 열기가
순식간에 가시고 눈이 시원해지면서 앞이 확 열렸습니다.
저의 두 눈에 기쁨의 눈물이 흘렸습니다.
저는 곧장 오랜 벗 목갈라나에게 달려가 소리쳤습니다.
‘꼴리따(Kolita), 드디어 불사의길, 영원한 자유의 길을 찾았네.’
세존이시여, 앗사지를 뵙지 못했다면,
앗사지께서 세존의 가르침을 저에게 전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평생 삿된 견해의 그물 속에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또 누군가를 괴롭히며 허망한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런 헛된 삶에서 저를 구원하신 앗사지의
은혜를 저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큰 소리로 게송을 읊었습니다.
삼먁삼붓다의 가르침을
그분에게서 듣고 깨달았나니
바라문이 성스러운 불을 섬기듯
그 은혜 잊지 못해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은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아는 사람은 곧 나를 아는 사람이며,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따르고 이들을 가까이하십시오.
이들은 청정한 삶을 돕는 훌륭한 벗입니다.
사리뿟따는 여러분에게 생모와 같고,
목갈라나는 여러분에게 양모와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따르고 이들을 가까이하십시오.”
모든 대중이 세존을 따라 라자가하로 걸식을 나섰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곧 나를 아는 사람이며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은혜를 알아야 한다’는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말씀은 단순한 덕담이 아닙니다. 중생은 수많은
생령의 도움 없인 살아갈 수 없습니다.
중생이 ‘나’와 ‘내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들은
‘나’와 ‘내 것’이기 이전에 ‘남’이고 ‘남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뭇생령들의 희생과 은혜를 망각하고서
나의 몸, 나의 소유, 나의 능력, 나의 재주를
논하는 자들은 교만에 휩싸인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고 있는 만물의 실상을 아는
자라면 결코 교만할 수 없고,
한 그릇의 물과 한 주걱의 밥을 보시한 이들의 은혜를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스치는 바람 한 줌에게도 감사함을 잊지 않으며
탁발을 마치고 기원정사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난처한 풍경에 대중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늙은 바라문 한 사람이 이 스님, 저 스님 아무나 붙들고
제발 자기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애원으로 고요한 정사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하얗게 센 머리에 이빨이 성근 것으로 보아 60은 넘어 보였습니다.
말라붙은 피부는 거무죽죽하고,
오랜 굶주림으로 눈동자는 누렇고 탁했으며,
볼품없는 옷가지에는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초라한 그 바라문의 손을 잡고
시원한 강당으로 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을 부르셨습니다. 30명의 장로가 좌정하자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물으셨습니다.
“바라문이여, 왜 출가하려 하십니까?”
노인은 굽은 허리를 더욱 웅크리고 울먹였습니다.
“늙어서 밥만 축낸다고 집에서 쫓아내더군요.
하긴 다 제 잘못입니다.
젊은 시절 게을렸던 탓에 앉아서 먹을 만한 재산도 모아놓질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굶는 처자시은 돌보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흥청망청 방탕하게 살았으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제 정신이 들고 보니 이렇게 늙고 병들어
천지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늙은이를 불쌍이 여겨 비구로 받아주십시오.”
흐리고 탁한 노인의 눈동자 위로 그보다 탁하고 무거운 눈물이 고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장로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이 바라문을 제자로 삼으시겠습니까?”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부처님께서 차례차례 눈빛을 살피셨지만
장로들은 고개를 숙이고 애써 그 눈길을 외면했습니다.
그 눈길이 저에게까지 왔습니다.
저는 가볍게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허락하신다면 제가 이 바라문을 제자로 삼겠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던 불쌍한 바라문은 물론
모든 장로들의 눈길이 저에게 쏠렸습니다.
“사리뿟따, 그대는 왜 이 바라문을 제자로 삼으려는 것입니까?”
“저는 이 바라문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이 바라문이 그대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습니까?”
“언젠가 라자가하에서 걸식할 때 이 바라문이
저에게 한 덩이 밥을 보시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사리뿟따는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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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